'해외 공사실적 조작' 의혹은 그동안 건설업계에서 심심찮게 제기됐었다. 하지만 심증은 가면서도 물증이 없어 묻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이 건설업계의 진정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끝에 일부 건설업체의 해외 공사실적 조작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해외 공사실적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것. 건설업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수사 확대와 철저한 검증시스템 마련 등 후속조치를 주문했다.
중도일보는 검증시스템 없이 서류만으로 인정됐던 해외 공사실적 관행을 개선하고자 '해외 공사실적 부풀리기 무엇이 문제인가'란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현행 해외 공사실적은 관련업체가 계약체결 후 15일 이내에 해외건설협회에 관련서류를 제출하면 협회가 계약서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인정해주고 있다.
물론, 시공실적에 기성금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거래내역서와 설계도면, 현장사진, 출입국증명서, 수주활동 및 계약·시공상황 보고서 등 증빙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해외건설협회는 그런 만큼,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 공사실적 조작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설업체의 해외 공사실적 조작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근 충남경찰청 수사2계는 해외건설협회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해외공사 실적을 허위로 부풀려 17개 건설사가 관급공사를 수주토록 한 브로커 A씨(51)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또 A씨로부터 뇌물을 받고 허위 해외실적을 인정해준 해외건설협회 직원 B씨(44)를 배임수재 혐의로, 조작된 서류로 국내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 대표 C씨(53) 등 2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8년 11월부터 2009년까지 B씨에게 모두 2억 5000만원의 뇌물을 제공했고, A씨는 이를 빌미로 자신이 설립한 건설사 및 이사로 등재된 17개 건설사가 모두 2521억원 상당의 해외공사를 딴 것 처럼 공사실적증명을 제출, 관급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통되지 않는 백지수표를 복사한 뒤 금액을 임의로 적는 수법으로 신고서류를 허위로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업계에 떠돌던 '해외 공사실적 조작'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더욱이, 해외건설협회 마저 허위로 작성된 해외 공사실적을 철저한 검토없이 인정해준 셈이다.
해외실적 조작에 협회 직원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해외건설협회의 위상은 물론, 신뢰가 크게 실추됐다. 이에따라 건설협회의 서류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허술한 검증 절차가 문제인 것이다.
건설업계는 또 해외실적을 국내실적과 같이 인정해주는 것을 노리고 관급공사 입찰에 실적이 부족한 건설업체가 브로커를 통해 조작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만 이들 실적 조작업체로 인해 관급공사 입찰에 떨어져 선의의 피해를 본 규모는 대략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이를 감안할 때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 조작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건설업계는 이같은 해외 공사실적 조작 업체로 인한 선의의 피해업체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시스템 등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건설협회의 실적 검증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이 같은 사례는 이번에 적발된 업체 외에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적 조작 업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와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운석 기자 b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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