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매몰지가 앞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낼지 아무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환경오염원이 될 수 있어 전례 없는 '환경 재앙'이 일어날까 걱정스럽다. 부실한 매몰지는 집중호우가 내리면 붕괴, 유실 가능성이 있다. 전국의 모든 매몰지를 대상으로 슬라이딩(붕괴 또는 유실) 위험성 등에 대해 정밀 조사가 필요하며, 봄철이 되기 전에 이런 조치가 완료돼야 한다. 인터뷰에 응한 환경부 장관의 말이라 한다.
주무부처 장관이 피해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수 있는가? 환경 재앙을 걱정만 하고 있어도 되는가? 이런 말들은 문제발생 초기에 벌써 나왔어야 했다. 그래서 만전의 대책과 준비를 강구했어야 옳다. 이 정도의 인식은 기본에 속하는 것이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지금에 와서 정밀 조사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살처분된 가축은 모두 312만7463마리(2월 6일 현재)이고, 전국의 매몰지는 4054개소(2월 5일 현재)나 된다고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해 12월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 가금류 500만 마리가 전국 197개소의 매몰지에 파묻혔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작년 5월까지 10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발생한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약 22만 마리, 매몰지는 620개소 정도였다고 하니 이번 구제역 파동의 심각성은 불문가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무장관이 '환경 재앙' 운운하며 태연한 낯빛으로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이미 침출수가 유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은 매몰지 붕괴, 유실로 인한 환경오염에 비해 가공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 붕괴(유실)된 매몰지는 보강공사를 통해 대처할 수도 있으나 침출수는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침출수 유출의 대책으로 정부 관계자가 예상하는 것이 고작 지하수 음용을 금지하고 상수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나마 상수도는 오염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2500만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의 상수원인 한강과 팔당호가 오염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기도내 매몰지는 2313개소(2월 15일 현재)이며, 팔당호 특별대책권역에 137개소, 팔당호 상수원보호구역 반경 15km 이내에도 77개소나 된다고 한다. 경기도내의 남한강, 북한강 그리고 그 지천들이 모두 팔당호로 흘러들어온다. 생각해 보라. 등줄기가 서늘해지지 않는가? 한강과 팔당호가 오염된다면, 2500만명이 마실 물이 없어 아비규환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의 존립 여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01년 대규모 구제역 발생으로 홍역을 치렀던 영국은 그 뒤 시스템 정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07년 8월 3일 구제역 발생신고가 들어오자마자 전국에 소 이동을 금지시키고 당일 중에 구제역 검사를 마치고 살처분까지 완료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2000년 이후 네 번이나 구제역이 발생했으나 그 어디서도 영국과 같은 신속대처 시스템이 작동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지각 없는 축산농가로부터 시작된 구제역으로 환경 재앙을 걱정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속수무책이다. 주무장관의 걱정이나 경고도 후일을 위해 준비한 면피성 발언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번 구제역 파동에 대처하는 주무장관이나 정부 관계자를 보면서 저급한 우리 국격(國格)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격은 지식, 기술, 산업 등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지엽이요 표피에 불과하다. 국격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의 인격으로부터 세워지는 것이다. 국민들의 인간적 품격이 높아야 국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장관이나 정부 관계자라고 하면, 뽑힌 사람들이고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이다. 이런 사람들조차 자기 직분에 맞는 언행과 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국민들의 인간적 품격을 높이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또 배우게 해야 한다. 다시금 무거운 마음으로 교육이 얼마나 위대한 국가사업인지 반성해 본다. 내실을 돌보지 않고 겉치레만 좇아다니게 만든 방치된 세상이 안타깝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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