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
대흥동 일대를 돌면 여기저기 숨어 있는 전시장에서 화사하게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만나는 그림들의 반가움 뒤에, 전시장은 쓸쓸함을 안고 있다. 이는 전시 오픈일에 작가를 찾아온 지인들이 다 빠져 나가고 난 이후 몇 몇의 사람만이 전시장을 찾는 그 쓸쓸함일 것이다. 그야말로 그림들만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 관객이 없으면 그것만큼 맥빠지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공연이 관람료가 있는 것에 비해 미술 전시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람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 난 얼마 전 한 전시장 입구에 붙여진 문구에서 서글픈 현실을 보았다.
'관람료 무료! 구경 오세요….' 이 문구는 굳이 무료 유료를 따져서 전시장을 찾고 안찾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꼬리말처럼 '그림 볼 줄 몰라요'라고 덧붙인다. 그림은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접하는 전유물로 생각하고 볼 줄 모르는 사람은 가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특별한 수준을 요하지도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자주 보다 보면 흥미가 더해지고 그에 따른 지식도 쌓이게 된다. 관객들은 작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자신의 수준이 들통 날까봐 걱정한다. 그러나 작가는 관람객으로부터의 어떠한 질문도 반긴다.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보여주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질문을 하면 작가는 행복해한다. 전시장의 예술작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를 의미있게 바라보듯 전시장의 작품을 관객이 의미있게 바라보며 말을 걸어주기를 작가는 원하고 있다. 작가와 예술작품,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관계가 그동안 만들어진 딱딱한 예술의 선입견을 깨고 자유롭게 소통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우리문화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전시장의 쓸쓸함은 또한 작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관객과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되는 시대에 현대성이라는 커다란 무게 아래 너무 난해한 그림으로 소통이 단절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전시공간에서 관객과 직접 만난다는 전제하에 작가에 의해 탄생되는 장르다. 근래 들어서 많은 작가들은 작품 제작과정에 관람객을 참여시키는 등 소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듣게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이루기까지 더욱 다양한 방법이 시도돼야 할 것이다.
대전에는 200여개의 미술관 및 갤러리들이 운영되고 있다. 언뜻 숫자로만 보면 전시공간이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갤러리들이 운영난에 힘들어하고, 겸업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전문화랑이기보다 공간 활용에 그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발행되는 '대전아트가이드'를 들고 금주에 열리는 전시를 보려고 나들이 길을 나서면 작가들조차 대전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전시장들을 보고 한 두 군데를 들른 후에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대흥동 일대에 밀집돼 가는 전시장 문화는 유흥문화들 틈에서 작은 빛을 발하고 있다.
봄빛에 즐거운 전시장 나들이 문화가 정착되려면 봄 햇살에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꽃을 유심히 관찰하듯 관객은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고,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기획하며, 행정가는 이러한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된다면 봄빛 나들이 전시가 더 기다려지고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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