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오토바이를 몰며 우유를 배달하는 노인 만석과 폐지를 줍는 송씨 할머니가 서로를 비켜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만 작은 사고가 둘의 만남을 주선한다.
까칠한 버럭쟁이 만석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한편 송씨가 폐지를 파는 고물상 근처 주차장에서 일하는 군봉에겐 치매를 앓는 아내 순이가 있다.
군봉은 “나 겁쟁이 아이가. 당신 없인 못 산대이”하며 무한애정을 퍼붓고, 순이는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남편을 볼 때마다 “오늘 뭐 했어? 이야기 해 줘”하며 남편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처럼 영화는 황혼의 로맨스를 동화처럼 그린 판타지다. 사랑을 시작하려는 노년과 사랑을 끝맺으려는 노년을 번갈아 비추며 사랑이란 감정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만석에게 ‘이뿐’이란 이름을 얻고는 행복에 벅차하는 송씨, 송씨가 사준 장갑을 줄기차게 끼고 다니는 만석의 모습은 첫사랑의 신열을 앓는 청춘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생일날의 케이크와 머리핀, 서툴게 써내려간 수줍은 편지, 그리고 “그대를…사랑…합니다”라고 서툴게 고백하는 장면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만석과 송씨의 사랑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면, 영원한 사랑 혹은 사랑의 영면을 도모하는 군봉과 순이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눈물짓게 만든다.
추창민 감독은 강풀의 동명 만화 원작을 충실하게 화면으로 옮겼다. 인물이며 배경이며 웹툰을 그대로 옮긴 듯한 화면은 동화적 상상력과 판타지에서 빛을 발하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강풀 만화의 재미와 감동을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한다.
원작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주연배우들의 호연 덕이다. 국민배우 이순재와 그간의 강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소녀 같은 송씨를 그려낸 윤소정, 절제의 연기를 보여준 김수미와 이 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로 분한 송재호까지, 합하면 200년이 넘는 연기 공력이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오달수 이문식 송지효의 명품 조연 연기도 가슴 따뜻하게 덥힌다.
군봉와 순이, 만석과 송씨의 후일담에 가슴이 뻐근해지고 뭉클해진다. 무릇 사랑은 저런 것이 다 싶고, 그들처럼 늙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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