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영화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영화에 걸맞은 상찬이었다. 이 '한국 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가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전설로만 떠도는 게 못내 아쉽다. 이 '만추'를 리메이크한 2011년 판 '만추'는 이런 아쉬움을 곱씹게 하면서 한편 달래준다.
남편을 죽이고 스스로 시간을 멈춰버린 애나. 그녀가 낯선 남자 훈을 만나 죽은 시간이 깨어 째깍거리는 소리에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만추'는 포착한다.
'이렇게 멋졌나' 싶을 정도로 현빈은 멋지다. 안개가 스멀거리고 비가 내리는 시애틀의 쓸쓸한 풍광도 눈길을 잡는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이 신성일이 아니라 온전히 문정숙의 영화였듯, 탕웨이의 영화다.
탕웨이의 얼굴로 시작해 탕웨이의 얼굴로 맺는다. 탕웨이의 얼굴은 시종 표정이 없다. 스산하다.
하지만 탕웨이는 '무표정'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스펙터클을 전시한다. 메마른 입술과 떨림으로 웃고 놀라고 멈칫하고 슬퍼하고, 마치 말하는 것처럼 의미를 생산한다. 느린 호흡에 표정 없음으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를 탕웨이는 표정 없음의 표정으로 살려낸다. 매혹적이다.
목소리도 귀 기울일만하다. 남자가 알고 있는 중국어는 '하오(좋다)'와 '화이(나쁘다)'뿐이지만 애나는 자신의 과거를 중국어로 털어놓는다. 이때 탕웨이의 중저음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격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남자에 대한 감사, 그가 준 선물에 대한 감동, 드디어 희망을 찾은 순간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털어놓는 애나의 모습은 가슴 시리게 안타깝다.
김태용 감독은 화해와 소통의 기적에 강한 믿음을 가진 듯하다. 영어와 중국어를 오가며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남녀의 대화는 구구절절 설명이 없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감독의 믿음이자, '만추'가 진정 바라는 판타지일 것이다. 헤어질 때 훈은 말한다. “웃어요. 난 당신이 웃는 얼굴이 좋아요.” 그리고 애나는 엷은 미소를 짓는다. 카메라가 내내 탕웨이의 얼굴을 쫓는 것도 관객이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것, 그 미소다.
혼자인 것이 더 편하고, 쓸쓸함을 양식 삼고 살아온 지친 삶을 치유하는 영화.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만나고 헤어지는 두 배우의 그림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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