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옆집 문 앞에 놓았다는 쪽지의 내용은 우리를 더욱 처절하게 한다. 30대의 젊고 유능한 여성이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쪽지에 '남은 밥 한 그릇과 김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남은 밥 한 그릇과 김치는 결국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동종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서 이 참담한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애도의 물결은 이어졌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애도의 댓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차마 그대로 옮기기 곤란한 말을 동원해 현 정부의 사회안전망 부실을 질타하는 글들이 많았다.
다른 네티즌들은 젊은 사람이 밥을 먹지 못해서 죽었다는 말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결단코 소말리아가 아니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나라다. G20을 개최해 국격이 한량없이 높아진 나라다. 그런데 어찌 밥 한 그릇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느냐며 어디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한다면 배는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밥 한 그릇 때문에 유능한 젊은이가 우리 곁을 비참하게 떠났다는 엄연한 사실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일이 비단 그 시나리오 작가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필자가 재직하는 복지관을 찾아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을 봉사현장으로 안내하기 전에 잠깐 교육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지역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분 중에 끼니를 거르는 노인들이 있다고 하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끼니를 거르는 분들이 정말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이라고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감추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끼니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느냐고 되묻는 분들도 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고 조용히 물으면 그때서야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이 많다.
밥이 곧 하늘이라고 설파했던 한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밥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한 웅변이다.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다른 말을 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어떤 프로젝트도 밥 문제보다 앞설 수는 없다. 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을 막론하고 최우선적인 책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밥 문제와 관련해서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적인 이미지에 수려한 외모를 갖춘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그는 무상급식을 언급하면서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거친 표현을 여과없이 사용했다. 그는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교육환경의 개선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한다고 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무상급식 문제가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해치는 문제로까지 비화될 것 같아서 염려스럽다. 사실 무상급식의 비용부담 문제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결론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 설령 이 문제에 관한 다른 견해가 있음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오 시장의 호들갑은 유난하다.
밥을 이념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자신의 철학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다. 한 끼니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절망과 아픔을 보듬어 안으려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더이상의 참담한 비보를 막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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