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대학생다운 엠티(MT) 문화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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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대학생다운 엠티(MT) 문화를 기대하며

[목요세평]김원배 목원대 총장

  • 승인 2011-02-16 14:16
  • 신문게재 2011-02-17 20면
  • 김원배 목원대 총장김원배 목원대 총장
▲ 김원배 목원대 총장
▲ 김원배 목원대 총장
엠티(MT)의 계절이 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대학의 새내기들이 서로를 알고 대학의 문화를 알고 선후배가 친숙해지는 데 필요할 법한 것이 엠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학부모들과 교수들 사이에선 이 엠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엠티의 계절만 되면 으레 언론에는 과음으로 인해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몇 건씩은 보도된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을 강요하는 문화다.

예전엔 대학의 선후배가 둘러 앉아 밤새도록 술을 마셔도 탈이 없었다. 술을 권하긴 해도 강제로 마시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화기애애하고 위트 넘치는 대화와 춤과 노래가 밤새도록 이어지는 자리인 만큼 술이 취하긴 해도 불상사가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요즈음 일각에서는 선배가 마시라고 하면 자신의 주량과 상관없이 마셔야 하는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이런 문화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하도 사고가 나니 학생들이 엠티를 간다하면 교수들은 불안하다. 학생들을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교수들이 현장을 방문하지만, 실은 사고방지를 위해서 학생들을 감시하러 간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교수들은 학생회 임원들을 한 쪽으로 불러 단단히 타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현장을 떠난다. 그래도 엠티가 끝나기 전까지는 현장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 교수들이 간 사이에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어떻게 다룰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중에 슬그머니 학생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불시에 방문하기도 한다.

대학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선배가 후배들을 강압적으로 통솔하는 것이 군사문화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예전에도 거의 모든 남학생들이 군대를 갔다 왔고, 지금은 없어진 교련이라는 군사과목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오히려 이런 일이 드물었다. 그러니 일부 학생들이 군대 시절의 버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교육의 직선적 획일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학생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시달린다. 그들이 대학에 오기까지 보았을 시험이 몇 번이었을지 세어보기도 겁난다. 그것도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의 모든 학교가 똑 같은 시험지로 한 날 한 시에 보는 시험을 저들은 몇 번이나 봤을까.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좋다는 문제집, 좋다는 학원, 좋다는 선생님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직선적인 일사불란함이 저들이 대학에 오기 전까지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지나 않았을까.

얼마 전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소개한 일화가 생각난다. 어느 학생이 대학을 합격하더니 그동안 보던 책을 모두 내어다가 폐지처럼 묶어놓더라는 것이다. 그걸 보고 그 학생의 부모는 여태까지의 아이의 공부가 헛공부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화이트 헤드에 따르면 교육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불활성의 지식'(inert ideas)을 축적하는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들이 서로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머릿속에 쌓여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공부, 우리의 교육이 이런 것을 획일적으로 주입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초등학교부터 우리의 아이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은 얘기는 오로지 좋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혹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혹은 자발적으로 한 모든 공부의 종착점이 수능이라는 시험이다. 그 점수를 잘 받는 것만이 좋은 대학의 입학을 보장한다. 그런데 수능이란 무엇인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따려면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 모든 과목을 잘하기 위해서 머릿속에 단편적인 지식을 마구 쑤셔 넣어야 하는 공부, 이것이 불활성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엄청나게 많은 과목과 아주 피상적인 사실들. 학생들은 그것을 가지고 수능이란 시험에 맞게 준비할 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끝까지 파고들거나, 현실에 적용하거나, 다른 과목의 내용과 연관 지을 시간 따위는 없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사불란하게 최단거리로 가지 않으면 낙오된다.

조직에서의 '일사불란'함. 리더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올 것을 요구하는 이 행위의 직선적 효율성은 리더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본래 직선이란 있기나 한가? '모든 직선은 신성모독'이라는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훈더트 바서의 말이 생각난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쟁취하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그 곡선적 자유를 선배가 후배를 더 쉽게 통솔하기 위해서, 조그만 그룹의 위계질서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그렇게 쉽게 내던진다면 이게 대학이고 대학생인가?

대학생다운 엠티 문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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