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기정 금강문화유산연구원장 |
4대강사업 개발지역의 문화재 지표조사에 참여하던 2009년 1월부터 지금까지 간간이 뇌리를 스치는 생각 중 하나가 “왜 4대강 사업은 친환경적이어야만 하는가?”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4대강 개발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4대강은 이미 역사적ㆍ문화재적인 면에서 훨씬 중요한 존재다. 때문에 “왜 4대강사업은 친문화재적이지 못한가?”라고 반문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고대 문명을 막론하고 강은 문명의 발상지로서,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해 왔다. 금강만을 예로 들더라도 웅진과 사비백제의 고도였으며, 더 이전 시기인 청동기시대에는 '송국리식문화'가 번성하여 마한의 모체가 되었고, 신석기시대에는 소위 '금강식토기'라는 독특한 문화전통이 존재했던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문화 중심지였다. 따라서 지금의 4대강을 그저 강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유장한 역사를 간직한 역사자산이자 우리 민족을 잉태한 역사적 생명체라는 인식을 하고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해나가야 한다는 사명 의식을 지금의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 4대강의 사업 추진과정에서 문화재 조사는 결코 치밀하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조사단이 구성되기도 전인 2008년 12월에 문화재청에서는 2009년 1월에 시작해 4월 이전에 지표조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이후 2009년 1월에 23개 조사기관이 참여키로 하였지만, 동절기여서 실제 조사는 2009년 2월부터 4월까지 이루어졌다. 조사 초기까지도 사업지역의 설계도면이 채 확정되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 그만큼 4대강사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4대강 전역의 지표조사 대상 면적은 2억 9,435만㎡에 달하였지만, 정해진 조사 일정 때문에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도 조사를 진행해 나갔다.
이렇게 진행된 지표조사 결과, 4대강과 인접한 지역에서만 1,462개소의 문화재가 확인되었고, 이 중에는 169건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조사기관에서는 공사범위에 직접 포함되는 7천 749만㎡의 면적에 대해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그 해 5월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조사대상 면적이 1/8로 대폭 감축되었다. 심의가 있기 전인 4월 25일에 문화재위원회는 비문화재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큰 폭의 인적교체가 있었기에 학계와 언론에서는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4대강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수중문화재에 대한 조사는 일부만 진행되었고,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 영릉 문화재보호구역과 부여 왕흥사지 주변 지역 등은 공사 후 지반 침하의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공주와 부여의 역사유적지구 19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받을 예정에 있지만, 역사유적과 그 주변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심사기준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대단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부여지역의 금강 5공구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4만여㎡의 면적이 공사가 진행되어 훼손되었고, 창녕·함안 농지 리모델링 지역에서는 문화재 부실조사 문제가 발생하여 급기야 2010년 11월에 전국 고고학교수들이 4대강 유역의 철저한 문화재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4대강사업 문화재 조사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데, 원인 대부분은 너무나 일방적이고 빠른 사업 추진과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기인하고 있다. 지난달에 감사원에서 4대강사업의 문화재 조사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지만, 국가적인 사업인 만큼 행정절차 준용에 연연하기에 앞서서 철저한 조사 진행과 사후 문화재 활용방안에 대한 면밀한 사전 계획이 먼저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훼손된 자연환경은 어느 정도 회복할 여지가 있지만, 한 번 파괴된 문화재는 다시는 원형으로 복구할 방법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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