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움직이지 못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주인공 애런은 주말마다 암벽을 타는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영화는 초반, 날개라도 달린 듯 협곡을 넘나드는 애런을 따라가며 때론 뛰고, 때론 휘청거리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러다 돌연 멈춘다. 애런이 협곡 사이로 떨어지면서 오른팔이 바위에 끼여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가진 거라곤 500㎖ 물 한통, 캠코더, 로프와 칼, 헤드랜턴 뿐. 이런 상황에서 액션영화가 가당키나 할까.
애런이 갑자기 불어 닥친 폭우 속에서 살아보려고 버둥거릴 때, 하루에 몇 십분 동안만 가능한 햇살을 만끽하려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때 애런의 손과 발은 그야말로 액션이다. 애런이 돌에 낀 오른팔을 기어코 잘라내는 장면을 지켜볼 수 없는 건,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라 체험하게 만드는 연출 때문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영웅담이 아닌 삶에 대한 찬가다.”
보일의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 않는다. '127시간'은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 등반 중 조난돼 5일 7시간 동안 사투 끝에 자신의 팔을 끊고 살아 돌아온 애런 랠스톤의 실화다. 어쩌면 한 개인의 영웅담에 머물 이야기를 영화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로 들려줌으로써 삶의 찬가를 연주한다.
암울한 상황에서 애런은 집을 나서기 전 걸려왔던 동생의 전화를 떠올리며 부모와 연인 친구를 떠올린다. 그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절망하지만 절망을 딛고, 행복했던 순간을 동력 삼아 무딘 칼로 바위를 깎는다. 살고 싶다는 의지, 그 생명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 위대함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닿아 있음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보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꽤나 긍정적이다. 악몽에서 기적을 퍼 올릴 수 있을까. 보일의 답은 여전히 '그렇다'다.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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