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지사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초등학교 시절 ‘자유교양대회’를 떠올렸다. ‘자유교양대회’는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대회였다. “그 때는 고전읽기도 선수 뽑아서 했다. 내가 학교 대표로 뽑혀 성경이나 위인전 등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자연히 국어와 국사가 좋아졌다”
그는 학창시절 다른 성적은 기복이 있어도 국어 성적만은 예외였다. 국어 성적은 늘 잘나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시험이 끝나면 다른 과목 성적은 상관없이 국어시험 성적만 항상 물어볼 정도였다.
김 부지사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국문과 선택했다.
어린 시절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는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욕심을 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며 인생에서 한발 떨어져 볼 수 있는 게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김 부지사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저널리즘에 관여를 많이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회지나 학보를 만들었다. 전두환 정권시절이던 대학 때는 광주 항쟁이나 대통령 직선제에 관한 신문을 독자적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처음 꿈은 의사였는데 청와대에서 대변인과 홍보비서관도 하고 나중에 인생 풀린 것을 보니 저널리즘 쪽으로 많이 풀렸다”
김 부지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1993년 노 대통령이 여의도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개설하면서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동기였던 그는 당시에 자주 사무실을 오가며 노 대통령과 가깝게 됐다.
“당시 안 지사나 이 지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일를 했다. 반면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며 한발 떨어져 그들을 바라봤다”
김 부지사는 충청도 기질을 가지고 있다.
“살면서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고 의식해 본 적은 없지만 악착스럽다는 느낌은 안주면서 큰 승부에서 밀리지 않고 살았다”며 “일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여유를 주며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충남도청 내에서 김 부지사는 컴퓨터 박사로 통한다. 왠만한 기술자만큼이나 컴퓨터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를 사용할 정도로 IT에 관심도 많다.
“청와대 홍보비서관 시절부터 3년정도 인터넷업무를 총괄했다. 당시 노 대통령께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아 업무상 이유로 관심을 많이 갔게 됐다”
김 부지사는 충청남도 근무 이전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청와대와 지방정부의 차이를 두가지 꼽았다.
“청와대의 경우는 기획 중심의 업무가 많은 반면 지방 정부는 집행 현장과 밀접해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또 하나 청와대의 업무는 가치 추구와 같은 추상적인 부분이 많은 반면 도는 정책을 실행해 보고 조정이 가능한 역동적인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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