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삐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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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권 ]삐삐의 죽음

[중도마당] 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 승인 2011-02-07 14:46
  • 신문게재 2011-02-08 20면
  • 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필자가 예전에 모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그룹 회장이 주재하는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던진 말은 '삐삐의 죽음'이라는 다소 비장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 땅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무선호출기(삐삐)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지금도 '8282', '58 82' 등 숫자식 약어가 기억이 날 정도로 당시 삐삐의 기세는 대단했다. 삐삐회사 중 하나인 나래이동통신이 프로농구단을 운영할 정도로 삐삐의 사업성은 아주 좋았고, 많은 사람들은 삐삐가 그 후에도 오랜 기간 롱런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삐삐가 그처럼 한반도를 주름잡고 있을 때, 아령같이 무겁고 둔탁한 휴대폰이 등장했다. 휴대폰이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저런 것을 불편하게 뭐하러 들고 다니냐?'고 하면서 핸드폰이 삐삐를 죽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휴대폰이 등장한 후 5년이 지나 삐삐는 거의 전멸했다.

10여년전 그렇게도 '삐릭 삐릭'하며 울어대던 삐삐를 지금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대신에 다양한 하모니로 무장한 휴대폰 아니 스마트폰이 삐삐의 빈자리를 아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변화관리(Change Ma nagement)라는 화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IMF 금융위기 때가 아닌 가 싶은데,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리고 그 후 리먼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변화관리'는 더 이상 우리들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명제가 된 듯하다.

과거의 시대에는 외부적 환경이나 내부적 요소의 변화가 예상가능했다. 대체로 경제여건은 큰 틀에서 성장가도를 달리도록 조성되었고, 그에 따라 내부의 구조나 역학도 큰 무리없이 외부환경 변화에 순응하였기에 변화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생존과 번영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에 있어서 성장의 피로감이 몰리고, 국내 경제의 여러 여건들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과거에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역기능적인 변화가 쓰나미처럼 우리 주위를 휩쓸게 되었다. 그리하여 삐삐가 어느 순간 정말 예고도 없이 전멸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삐삐의 죽음처럼 그러한 변화가 쉽게 예상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에서 나오듯이 우리 주위의 변화는 계속해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또한 우리들 모두는 그러한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지 알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건 알아. 하지만 무슨 큰 일이 있겠어'라면서 과거의 경험에 따른 관성의 법칙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삐삐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죽었고, 그러한 삐삐의 죽음이라는 변화를 예상하고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업자들 역시 죽었다는 것이다. 치즈가 매일 매일 옮겨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옛날에도 그랬어.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변화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생쥐 역시 죽는다는 것이다.

과거 근세시대나 20세기는 조정경기처럼 모든 외부환경이 예측가능했고, 조정경기장이라는 외부환경에서 활동하는 조정선수 역시 자신의 주어진 역할만 잘 수행하면 우승이라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나, 지금의 21세기는 불행히도 조정경기장은 사라졌고, 예측이 잘 안되는 심산유곡의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급물살이 판치는 계곡물에서 래프팅을 잘 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선장이자 선원이 되어야 하고, 구성원 각자의 모든 오감을 동원하여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에 따라 구성원 각자가 자율적으로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조정의 시대에는 '누가 빨리 가느냐?'가 문제되었지만, 래프팅의 시대에는 '누가 생존하느냐'가 핵심이슈가 되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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