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제봉 전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 |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중의 하나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祖上神)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이다.
또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거의 같은 날 아침에 차례를 올리고 한 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날의 어원을 보면,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는 세 가지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섦'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돼 새로운 해에 통합돼 가는 전이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런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돼 설날로 와전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돼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 삼국지(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문무왕때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봐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홍수처럼 밀려드는 신세대들의 인터넷 컴퓨터 게임에 밀려 점차 잊혀져가는 세배, 설빔, 덕담, 윷놀이, 널뛰기 등의 설 문화들을 전통적으로 이어가는 노력과 함께 민족 최대 명절다운 설날의 위상이 동시에 정착되고 확립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