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방엽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위성관제팀장 |
천리안은 지난해 6월 27일에 발사된 첫 번째 국내개발 정지궤도위성이다. 기상과 해양의 적외선 촬영이 가능한 두 대의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고 한반도와 연해주 일부 지역에 통신방송 시험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중계기도 탑재되어 있다.
천리안 덕분에 일본위성이 찍는 영상에 곁다리처럼 들어있는 한반도를 보며 기상예보를 하던 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한반도 상공의 구름 사진만 수백 장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천리안의 설계를 위한 해외파견 중에 한 연구원은 한 달여 간격을 두고 형과 어머니의 부음을 국제전화로 들어야 했다. 손님 여섯, 조촐한 첫 아이의 돌잔치를 했던 부부도 있었다. 모텔 방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노트북에 들어 있는 스타워즈를 스무 번 보았고, 영국에 홀로 있던 동료는 우리말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하곤 했다.
물론 이 어려움들은 세계 곳곳에서 뛰고 있는 대한민국 산업역군과 과학기술자들에 비하면 배부른 탄식일지도 모르겠다.
중동의 사막과 동남아의 건설 현장, 대서양의 배위에서, 머나먼 남극에서 가족들과 떨어진 채 험한 환경을 헤치고 묵묵히 일하는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멀리 찾지 않아도 많은 수의사들이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 업무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는 자기 아이에게 종두백신을 실험했었고 많은 의사와 화학자들이 자기 몸을 신약의 실험도구로 사용했다. 폴란드의 마리 퀴리는 라듐을 늘 지니고 다녀서 지금도 그녀의 유품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된다고 한다. 아폴로 1호의 화재 사건, 우주왕복선 폭발사고, 브라질의 로켓공장 폭발사고 등 연구개발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자들이 그들의 길을 계속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리없이 그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근 8년 동안 천리안 개발을 함께 했던 동료 한 사람을 시립추모공원에 묻고 왔다. 며칠 전 그는 겨우 35페이지의 '인생보고서' 작성을 끝냈다.
8년 전 연구소에 입사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작년 7월, 초기운영이 한창일 때의 일이 기억난다. 한 달 가까이 연구원에서 숙식하다시피 하던 어느 날 밤, 새벽 2시가 다되어 “김 박사님, 이것 좀 보세요!”라며 몽롱한 상태의 필자를 깨우던 초롱초롱한 두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동자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던 노트북에는 그가 이틀 동안 씨름한 끝에 완성한, 해양카메라의 첫 번째 컬러합성 영상이 떠 있었다. 파란색 바다와 녹색의 한반도가 어우러진 영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으며 이야기했다.
“훈장도, 포상금도 기대하진 않았지. 그걸 위해 우리가 8년을 달려온 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네. 당신 앞에 놓인 건 허연 꽃들뿐이니. 그래, 이거라도 많이 받게나….”
끝으로 그가 남긴 메모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오늘도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스스로 택한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유를 그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관심 없는 분에게는 흔하디 흔한 지구 영상 중의 하나이겠습니다만, 그러나 저에게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제 작은 힘을 보태 얻어낸 첫 성과.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여러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풀어나가 결국 두 달 전 성공적으로 발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감격적인 첫 영상 수신. 오로지 흑백으로 영롱한 이 빛에 취하여 연구원 바깥에서도 랩탑을 붙잡고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확인하고 분석하길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두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더군요. 참으로 가슴 뛰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중략)”-2장영준 선임연구원의 메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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