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기 바르게살기운동 대전광역시협의회부회장 |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이 이해고, 자기 위치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질 때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지난 해 4월 서초동 소년법정에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은 A양(16)에게 서울가정법원 김 모(47)부장판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무거운 보호 처분을 예상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A양이 쭈뼛쭈뼛 일어나자 김 부장판사가 다시 말했다.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김 부장판사는 “내 말을 크게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 하던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A양은 그동안 14건의 절도·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 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다. 법대로 한다면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 같은 무거운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이날 A양에게 아무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不)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가 내린 처분은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뿐이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A양이 범행에 빠져든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A양은 2009년 초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A양은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A양은 학교에서 겉돌았고,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말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눈시울이 붉어진 김 부장판사는 눈물범벅이 된 A양을 법대(法臺) 앞으로 불러 세웠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A양의 손을 꽉 잡았다.“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 사이를 법대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밖에 못 해주겠구나.” 무서운 벌을 주지 않았지만 그 소녀의 심정이 되어 이해하고 사랑으로 내린 판결이 한 소녀에게 세상은 역시 살맛나는 아름다운 것임을 희망으로 안겨주었다.
살맛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 심정이 되어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질 때 좀 더 빨리 이루어진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슴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손 내밀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우리단체의 생각만 내세운 일은 없었는지 활동가들 스스로 자신을 뒤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낼은 우리고유의 명절 설날이다. 국민모두가 고향을 찾고 행복해야 할 설날인데도 구제역과 높은 생활물가와 유난히 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축산인과, 추위보다 더 큰 외로움에 떨고 있는 노숙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족 등 우리가 보살펴야 할 이웃이 있다. 그들의 마음이 함께 기쁘고 행복하지 않는 설날은 의미가 없다.
함께하는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 이 추위를 이겨내고 희망으로 새봄을 맞이하는 행복한 설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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