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경 건양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
우리는 지난 60년을 참으로 숨가쁘게 앞만 보며 달려왔다. 한국전쟁이 남긴 세계 최빈국의 지위에서 우리도 잘살아보자는 일념으로 경제개발을 성공한 후, 올림픽과 월드컵을 거쳐 드디어 2010년에는 세계 G20 국가들의 정상회의까지 주도할 만큼 국력이 신장됐다.
이 모든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남다른 교육열과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경쟁의식과 근면성이 기반이 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외국 근로자들이 한국에 오면 제일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니, 과연 '빨리빨리'는 이미 한국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하는 대명사가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공평해서 그런지 얻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세계가 부러워 할 만큼 경제발전과 국력이 신장되기 위해서, 우리는 옛날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적 갈등과 인간 본연의 심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자면 빨리 일어나고, 빨리 결정하고, 빨리 만드는 등 남보다 빠르지 않고는 경쟁에서 이기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빠르기만하면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일까? 빠름을 추구할수록 대신 인간 본연의 심성은 황폐되고 내면적 사고의 깊이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 빠르고자 하니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니 참을성이 없어진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니 남을 배려하기 어렵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니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니 느림과 기다림이 갖는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행복감은 당연히 잃을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학생들은 도무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줄을 모른다. 휴대폰을 집에 놓고 나오면 학교에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할 망정 다시 돌아가 휴대폰을 가져와야 불안이 가신다고 한다. 휴대폰을 가방속이나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조차 불안해서 강의시간에도 항시 손에 쥐고 있거나 책상위에 놓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니 그 조급증이 극을 이룬다.
음악회에 가보면 또 우리의 성급함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오케스트라나 독주자의 연주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경쟁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울려댄다. 음악이 끝나는 시점을 잘 알고 있음을 과시라도 하듯 아니면 누가 빨리 박수를 치나 내기라도 하듯 서둘러 박수를 쳐댄다. 음악이 끝날 때 잠시 기다려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아쉬움과 남아 있는 여운의 아름다움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다.
좋은 문장을 찾아 밤새워 편지를 쓰고 또 써서 마음을 설레며 우체통을 찾아가던 우리네 젊은 날의 모습은 이미 신파가 된지 오래다. 휴대폰 속에서 몇 개 안되는 글자와 기호로 용건을 전달하는 데만 익숙하다 보니, 자기의 생각을 가다듬어 글로 표현하는 문장력이나 대화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이 빠르고 편리함으로 대변되는 디지털문화에 식상한 뜻있는 움직임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느림을 통해 인간의 착한 본성을 회복하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슬로우 시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슬로 시티' 운동은 이태리의 작은 도시 그레베에서 처음 시작된 운동이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증도 등 여러 곳이 슬로 시티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있다. 빠르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이제 거꾸로 느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게 되었음은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이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쉴 새 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느림의 여유를 찾아보자. 한 주에 하루쯤은 신문을 읽고 편지를 쓰는 날을 정해도 좋고, 한 달에 하루쯤은 휴대폰을 쉬게 해도 좋다. 그리고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도시마다 차 없는 날을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빠름의 필요성을 매일 거스르며 살기는 어렵겠지만, 때로는 느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여유로움과 정신적 풍요함을 느껴 볼 필요도 있다. 좀 더 빠르기 위해 참을성 없이 조바심치던 모습은 잠시 버리고, 느리기에 여유롭고 건강하며 행복한 모습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토끼의 해를 맞아 오히려 거북이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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