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해경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관장 |
나는 사회 형성의 가장 큰 기초를 교감(交感)이라 생각한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상관없다. 그저 무엇이든 끊임없이 서로 나누어야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교감이 없는 곳, 교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은 극도로 우울해진다.
사람이 가장 외로워질 때는 자신의 이야기가 독백이 될 때다. 내가 던진 말에 아무 반응이 없을 때 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잃게 되고 그 순간 외로움에 떨게 된다.
사람의 목숨은 들숨과 날숨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주고받는 '말', 즉 끊임없는 소통 속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존재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번화한 사거리에서 분주히 팔 흔들며 교통정리 하는 교통순경의 모습이 어느 날 문득 그토록 외로워 보인 까닭은 그의 분주한 팔 동작과 그의 곁을 지나는 수많은 차량, 사람들 사이에 진공의 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분주한 팔 동작이 허허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외로운 '섬'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살아가고 있다.
'히키 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심각성은 이미 사회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김씨 표류기'처럼 영화화되기도 한다. 비록 자신의 의지로 '섬'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극단적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도 교감이 중요한 분야가 있다. 바로 무대 예술 분야다.
좋은 연주자, 훌륭한 배우, 뛰어난 연출가란 자신의 얘기를, 자신의 감정을 객석과 완벽히 교감하는 사람이다. 음악에서 앙상블을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이 교감 때문이다.
연주자끼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것은 음악인이 갖춰야 할 가장 기초적 능력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감조차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관객과의 교감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교감을 이루어내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읽는 것이다. 이는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며 경청의 자세를 요구한다. 경청해야 상대방에 맞출 수 있고 반대로 상대방을 이끌 수도 있다. 이처럼 내 목소리를 내기 전 상대방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바로 이 때문에 앙상블이 중요한 것이다.
뛰어난 앙상블 단체들의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연주 중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서로 마음이 완벽히 통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곡을 통해 그리기로 한 서로의 그림이 약속한 대로 선명히 드러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앙상블이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자아를 버리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목표를 이루어가는 그 과정 때문이다. 그 과정을 무사히 그리고 아름답게 치러냈을 때 그 결과물은 독주 연주회 때와는 다른 차원의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앙상블을 통해 교감의 능력을 키우고 앙상블을 통해 교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앙상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비단 음악, 연극, 무용 같은 무대예술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사회에도 반드시 필요한 문제다.
가정, 직장, 마을, 도시, 국가 이 모든 사회의 카테고리가 원만히 아름답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서로 진솔한 교감이 필요하며 또한 교감을 통한 아름다운 앙상블이 필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사회, 살맛 나는 사회는 바로 이 교감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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