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기 충청남도의회 의장은 백제의 고도인 충남 부여 출신이다.
어린 시절 유난히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던 그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시절 5~6km 거리의 학교는 유달리 멀어보였고 오후반을 다니던 그에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전반 학생들은 유혹의 대상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어울리던 사이 수업 진도에서 멀어졌고 자연히 공부와도 멀어졌다. “열심히 노력했어야 했는데 잘 안했다.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은 마치 미국에 가 있는 거 같았다”
유 의장은 어린 시절 보스 기질이 있어 친구들이 잘 따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가방을 들어주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아침에 밥먹고 나오면 기다렸다가 가방을 들어주고 학교가 끝나면 교문 밖에 나와 집까지 들어다 줬다. “지금도 친구들을 가끔 보는데 친구들이 그 시절에 왜 그랬는지를 물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웃음)”
휘발유 보다 강한 ‘신나’. 유 의장의 별명이다. 한다고 하면 하는 스타일로 의원시절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때 뒤로 빠지거나 하지 않아 붙은 별명이다. “의회에서 투쟁할 때는 리더가 앞장서서 같이 해줘야한다”
학교를 보낼 줄 수 있는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유 의장은 학교 대신 사회를 선택했다.
상급 학교 다닐 돈을 달라고 해 양계농장과 과수원을 운영했다. 이후 지역에서 농촌활동과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70년대 대통일주체대의원 활동을 시작으로 부여군 초대 기초의원, 충남도의원을 하며 오늘의 충남도의장이 됐다.
유 의장은 처음 만나면 서먹서먹하지만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이런 면 때문에 선배들이 어디를 갈 때 꼭 데리고 갈 정도로 사랑받아 젊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하는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면이 배운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돈도 많지 않은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했다”
그는 상대방이 배신하기 전에는 배신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치를 하다보니 못지키는 부분이 있지만 그 때마다 이해를 구하고 했다. 하루 저녁에 변해서 누굴 배신하고 하지는 안았다”
최근 그는 운동으로 등산을 즐겨한다. 한 때 골프에 빠져 6~7년 동안 골프를 쳤지만 지금은 치지 않는다. “내 지역구가 농촌지역인데 농촌지역이라 사람들이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것고 해서 그만뒀다”
유 의장의 좌우명은 ‘정직하게 정면돌파하자’다. “지역구에 감언이설을 해서 표를 얻어 본 적도 없고 사실 그대로를 정직하게 이야기 하면서 살아왔다”
/이상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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