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에게 공납비리의 배후를 파헤치라는 명을 받은 탐정. 하지만 비리에 연루된 관료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고 수사는 난관에 부딪힌다. 탐정은 우연히 만난 개장수 서필과 사건의 단서인 각시투구꽃을 찾아 적성으로 향한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이 원작. 하지만 머리 쓰는 추리 대신 웃음으로 푼다. 상상이 가시는가.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이,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카리스마 강마에가 익살을 떤다는 게. 탐정은 피살자 뒤통수에서 대침을 뽑아내 사인(死因)을 밝힐 때는 셜록 홈즈 뺨치지만, 말끝마다 “뭘 해도 완벽하지 않느냐”고 으쓱대는 ‘자뻑형’ 캐릭터다.
게다가 조금만 불리하면 줄행랑을 놓는 겁쟁이다. 이 ‘쪼잔하고 염치없는’ 캐릭터를 늘 진중해 보이는 김명민이 연기한다. 어울릴까 걱정이 됐는데, 웬걸. 그간의 어떤 캐릭터보다 풍부한 활력을 드러낸다. 강마에의 고집스러움에 가까운 ‘허당 탐정’ 연기를 보는 맛이 꽤나 유쾌하다.
왓슨에 해당하는 개장수 서필 역은 오달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오달수-김명민 조합은 뜻밖에도 찰떡궁합이다. 툭툭 내뱉는 듯한 오달수 식 유머는 김명민의 오버 연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둘은 때로는 서로를 챙기다가도, 또 때로는 ‘계급장’ 떼고 티격태격한다. 덕분에 이야기는 사람 냄새나고 시종일관 활력을 유지한다. 청순 단아한 모습과 섹시 카리스마를 오가는 한지민의 팜므 파탈 연기는 짧은 분량임에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탐정과 서필은 쉴 새 없이 달리고 구르면서 미스터리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둘이 시장통에서 좌판을 엎고 도망가는 장면은 손꼽힐 만한 명장면.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는 박수감이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는 요령부득이다. 본질이 추리극임에도 서사를 쌓아가기보다 후반부에 몰아치는 바람에 이해가 쉽지 않다. 많은 양의 대사와 반복되는 재현으로 설명하려 들지만 웃음기 없는 화면은 지루하기만하다. 단순함의 미덕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TV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이를 극장판 으로 만든 김석윤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시트콤 냄새가 나는 건 그 때문일 거다./안순택 기자 sootak@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