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부 교수 |
반면에 거북이는 느리지만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해내는 은근과 끈기있는 동물로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의 토끼거북이는 토끼와 거북이 두 동물의 장점을 조화시킨 것으로 어떤 조합의 동물로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헐벗고 굶주린 1950년대부터 잘 사는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뒤 돌아볼 겨를 없이 토끼처럼 앞만 보고 능률과 효과가 있다면 거침없이 내달려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성장과 발전을 위한 당연한 부산물이며 이를 고려하는 것은 사치요, 낭비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어느덧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이제는 뒤를 되돌아보며 산천초목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고 부작용의 폐해를 검토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가질 때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거나 남을 배려할 여유를 가지지 못 한 채 너도 나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입시 준비가 시작된다. 선행학습이 일반화되었고, 고교와 대학에서는 조기입학과 조기졸업이 가능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물론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출중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일정 시수만 이수한 압축과정을 통한 조기입학과 졸업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빨리문화에 젖어 음식에도 패스트푸드가 유행해 청소년에서 성인까지 입맛을 바꾸어 놓았고, 이러한 음식의 영향으로 많은 성인병이 발병하고 있다. 디지털문명은 우리의 삶을 더욱 빠르게 살아가도록 강요하여 사람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광화문이나 남대문을 보수할 때 그 기간이 상당히 짧은 것은 건축기술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빠름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 광화문 현판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으니,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01년 9월 11일 테러에 의해 폭파된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빌딩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는 그라운드 제로 사업은 벌써 9년째 아직도 지하의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건축기술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이 아니라 신중하고 완벽하게 건설하려는 미국의 문화때문 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느림의 미학, 느림의 삶을 찾기 시작했다. 느리게 살자는 마을과 동호회가 생겨나고,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슬로푸드의 장점을 이해하면서 오랜 숙성을 거쳐 만든 조상들의 지혜가 넘친 음식문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압축성장의 덕분으로 우리 국민은 물질적 풍요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행복도 그만큼 높아졌는지 질문하고 싶다. 물질의 풍요로움만큼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삶의 과정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주에서 빠르다고 낮잠 자는 토끼가 아니라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단지 일등만 하면 되는지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일등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가 세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목표가 돼야 한다.
계획은 치밀하고 완벽하게 세우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면서 끝까지 목표를 달성하는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토끼처럼 빠르고 영리하면서도 거북이의 여유로움과 끈기로 자기가 세운 목표를 성취해가는 토끼거북이가 돼야 한다. 빠름과 느림, 서두름과 여유로움, 지혜와 배려의 조화를 가진 삶이 주는 행복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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