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전투.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3차 여당전쟁에서 신라에게 후방을 기습당한 고구려는 서기 668년 평양성까지 밀린다. 고구려는 적의 수중에 떨어질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버리는 청야전술(淸野戰術)로 뚝심 있게 맞섰다. 나당연합군의 규모는 신라군 27만, 당나라군 50만 등 77만. 이 거대한 규모의 싸움도 이준익에겐 놀이마당일 뿐이다. 김유신과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 남건 남산, 당나라의 이세적 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고 역사와 한판 논다.
뼈대는 전작 '황산벌' 거의 그대로다. 걸쭉한 사투리와 엉뚱한 삽화로 웃음을 끌어내는 점도 똑같다. 스케일은 훨씬 커졌다. '거시기'로 대표되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에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가 더해져 사투리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벌떼 공격과 동물 투척 등 기상천외한 전술도 기발하고 재미있다.
인물군도 더욱 풍성해졌다. 치매기도 있고 풍도 맞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의 귀재 김유신, 강직하고 우직한 고구려의 자존심 남건, 각종 기발한 환경무기를 선보이는 남생에 살아남기의 달인 거시기, 거시기와 남남북녀 커플로 맺어지는 갑순이 등 매력적인 인물이 즐비하다. 연기도 좋다.
자그마한 사건에도 시끌벅적 소란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각각 인물들의 개성에 힘을 실어주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이준익의 놀이에 민초들의 드라마가 빠질 리 없다. '황산벌' 백제 결사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평양성 전투에 다시 차출된 거시기와 더불어 문디 갑순이 머시기의 입담은 '역사상 가장 웃기는 전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설 연휴 가족관객을 겨냥해 욕설은 상당히 순화됐다. 그런 탓에 잔웃음은 잦아들었지만 깊이는 훨씬 깊어졌다. 이준익에게 놀이는 유희의 도구이면서 진실의 전달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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