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짐승을 사람에 비하랴마는 그저 단순하게 250만의 의미를 염량해본다면, 겨우 60일 사이에 대전시 인구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가축을 죽여 땅에 묻은 것이다.
그 중에는 염소와 사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소와 돼지다. 벌써 15만 마리 가까운 소와 240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지만 구제역이 얼마나 더 확산될 지 알 수 없다.
BC5000년경, 양과 염소에 이어 소·돼지를 사육함으로써 잡식성 영장류 인간은 진화를 위해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했지만, 자연계의 보편질서 중 하나를 붕괴시켰다.
본래 자연계 먹이사슬의 일부에 불과하던 인간이 다른 동물을 의식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했고, 다른 동물의 노동력을 착취해 대규모 잉여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문명발달의 원동력을 마련한 것이다.
그 후 수천 년, 이슬람권에서 돼지는 더럽고 게으른 짐승이라는 오해 덕분에 오랜 세월 살육을 면했는가 하면, 소의 노동력이 아쉬웠던 농경사회에서 소는 함부로 먹어치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기에 힌두교 사회에서는 신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한반도에 정착해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우리 조상에게도 소는 단순한 가축 그 이상이었다. 사람은 비록 보릿고개의 기근에 허덕일지라도 소를 살찌우지 못하면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기 어렵다. 파종을 준비할 때부터 추수까지 농민과 소는 함께 걷고 함께 땀 흘리는 동료였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많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개고기가 동물성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이유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소는 먹을 수 없고, 돼지는 사람보다 더 먹는다. 그렇지만, 개는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먹이를 찾다가 알아서 귀가해 집을 지킨다.
개가 비록 충성스럽고 영리하긴 하지만 개와 함께 가축을 몰고 다니며 텐트와 모닥불의 온기를 나누던 유목민이 개에 대해 느끼던 유대감과 농민의 그것은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따끈한 온돌에 흙발을 들일 수 없었던 우리 조상들은 개와의 사이에 여하한 동질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같은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근거없는 우월감에 젖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일부 서양인의 편견을 등에 업고 조선왕실 식단에도 들어 있던 '개장국'을 야만인이 먹는 음식쯤으로 헐뜯는 극소수 한국인의 끝모를 사대주의가 서글프긴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개를 먹지 않아도 단백질 섭취에 어려움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소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소는 이제 농민의 동료이자 농업생산의 주요 수단이 아니라, 단지 고기·우유와 가죽을 제공하는 가축일 뿐이다.
게다가 화학비료와 품종개량 덕분에 농업생산성이 크게 증대돼 가축용 사료공급이 쉬워지면서 오직 고기·우유 또는 달걀만을 대량 생산해 큰 이익을 남기려는 밀집사육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최근 매년 구제역이 발생해 엄청난 수의 돼지와 소를 죽이고 있지만, 원인을 알지 못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철새에게는 영향이 없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집오리와 양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만일, 일정 지역 내에 존재하는 특정 동물의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자연계가 스스로 질서를 회복시키려는 몸부림의 일부라면,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아파트 거주자가 많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우리가 삶의 편의만을 좇아 산과 들을 저버린 채 허공에서의 '밀집거주'를 고집한다면 언젠가 자연이 우리를 닭장 속의 양계처럼 '재배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