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아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매장한 동물들에서 나온 침출수가 주변 농지나 지하수로 흘러나오는 등 2차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구제역으로 뒤덮인 2011년 대한민국의 새해 풍경이다. 고기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재앙으로 돌아오리라는 음울한 전망이 2011년 한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난해 말 천안과 전북 익산에서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전염병인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했다. 우리의 식탁에 가장 흔히 오르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육류와 고기 공급원으로서의 가축이 일제히 바이러스 공격을 받고 있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 고약한 질병들의 발병이 매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옛날 농부들은 많지 않은 수의 가축을 키웠고, 그 가축들은 작물에 사용할 퇴비를 생산하고 그 지방의 땅에서 자라는 풀을 뜯었다. 그런데 지난 30년 사이에 기술자들이 농부의 자리를 꿰차고 농장 대신 공장이 들어서면서 가축이 '동물단위'로 바뀌었다.(앤드루 니키포룩 '대혼란'에서 인용) 이번 구제역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의 허술한 대응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제역 확산의 근본 원인은 공장식 축산이다. 축산업자는 저가의 축산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가축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곳에 가두어 키우고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지금 너무 싼 가격에 너무 많은 고기를 먹고 있다. 이런 얘길 하면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다.
가격이 오르는 경우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고, 우리는 얼마 전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과 통큰 LA갈비' 판매를 통해 소비자의 수준을 확인한 바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가축전염병을 이유로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나 축산업자에게만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식을 싼 가격에 즐기려는 모든 소비자에게 더 근본적인 책임이 있기에.
유럽연합은 동물이 감정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동물의 사육, 수송, 도축 등 모든 생산 과정을 소비자들이 알고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야 동물이 건강해지고 식품안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철학이 깔린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각국 정부는 축산업자가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도록 최소한의 공적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육식을 할 수 밖에 없다면 동물들이 생명으로서 존중받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사육될 수 있는 비용과 축산폐수를 처리하는 비용 더 나아가 파괴한 환경을 복구하는 비용 등 모든 비용이 반영된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고서 축산물을 구입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생각하는 공정한 소비다. 세계화로 국가간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생산성을 위해 밀집 사육을 하는 현상황에서 가축 전염병이 어쩌면 일상화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반복되는 가축전염병을 막는 길은 기존 가축 사육방식과 육식문화를 바꾸는 것밖에 없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영문도 모르고 생매장당하고 있는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현재 상황을 불러온 국가의 축산정책과 우리의 육식문화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고 바꾸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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