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훈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융합공학기술개발부장 |
현재 사용되고 있는 가속기 중에서 특히 중이온 가속기는 다른 가속기에 비해 역사가 비교적 짧다. 가장 큰 이유는 중이온이 양성자나 전자보다 훨씬 더 무거워 중이온을 높은 에너지로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마이크로파 전자공명 이온원의 개발과 관련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세계적으로 중이온 가속기의 활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전자공명 이온원은 강한 자장 속에 플라즈마를 가두고 고주파 전자공명 현상을 통해 전자들을 집중 가열함으로써 전자의 온도를 수억 도 이상으로 높여 원자(전자가 여러개 떨어져 나간)를 '다가이온'으로 만든 뒤 이를 추출해 가속기에 공급해주는 장치다. 원소의 다가수가 크면 클수록 동일한 전기장으로 더 쉽게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속기의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가속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서 전자공명 이온원은 중이온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 중 하나다.
우리가 보통 '이온'이라고 부르는 원자에서 전자를 하나 떼어 낸 상태의 이온보다 한 개의 원자에서 여러 개의 전자들을 동시에 떼어낸 다가이온은 만들기가 더 어렵다. 원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들 중에서 핵에 가까이 분포한 전자일수록 이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높은 에너지의 전자를 외부에서 만들어 충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원자의 마지막 전자까지도 떼어낼 수 있는 수억 도 이상의 높은 에너지를 갖는 전자들을 충분히 만들어 내는 일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되는 핵융합 장치처럼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어렵게 전자를 분리해 내더라도 틈만 있으면 다시 전자와 합치려고 하는 게 다가이온의 특성이다. 전자들의 에너지를 높이고, 높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핵융합 장치처럼 매우 강력한 자장으로 전자들을 가두어 둘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장을 높이면 마이크로파와 전자와의 중요한 에너지 전달 통로인 전자공명 현상을 일으키는 주파수도 증가하게 돼 마이크로파 주파수도 같이 높여줘야 한다. 이렇게 전자의 밀도와 온도를 높여주면 다가이온들의 밀도도 같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치료용으로 쓰이는 중입자 가속기의 경우 비교적 가벼운 탄소 다가이온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자장에서 운전되지만, 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계획하고 있는 중이온 가속기의 경우 매우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 이온까지 가속시킬 계획을 갖고 있어서 전자공명이온원이 사용하는 주파수와 자장을 가능한 한 높여야 원하는 성능을 얻어낼 수 있다.
현재 중이온 가속기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의 유수한 연구소들조차 아직까지 우라늄 다가이온을 원하는 양 만큼 충분히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자공명 이온원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들은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전자공명 이온원의 성능이 곧 중이온 가속기의 성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전자공명 이온원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2015년 완성을 목표로 한국원자력의학원을 중심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의료용 초전도 중입자 가속기에 탄소 다가이온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현재 확보된 기술을 기반으로 향후 중이온 가속기에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전자공명 이온원이 제작돼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전자공명 이온원은 가속기 분야뿐만 아니라 반도체 생산 공정과 나노 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이 가능하고, 다가이온빔을 활용한 물리연구 등에서도 새로운 분야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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