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
사실 많은 사람이 한국화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먹은 과거 경험한 기억속의 재료 중 무채색의 검정인데다가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실 때문에 한국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못한다. 먹은 검은색이 아니다. '먹색'이라는 고유명사를 갖고 특유의 표현력을 갖는다. 마치 지리산 능선들이 각각의 농담을 가지고 구름에 싸여 겹겹이 늘어서있는 그 모습의 색처럼 말이다. 게다가 먹물은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몇 천 년이 지나도 그 색이 퇴색되지 않는다.
탄소 성분이기에 변질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안정성이 확보된 재료가 또 있겠는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들처럼 주기적으로 보수와 유지에 막대한 자금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이야말로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동양의 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먹이 옷에 묻었다 하더라도 밥풀로 문질러 애써 지우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 묵향을 두고 천 년을 기다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한국화의 재료 중 화선지 또한 교실 안에서 괄시와 천대를 받아왔다. 얇고 여려서 번지고 찢어지고 둘둘 만다고 해도 보관과 운반이 힘들다. 반면 켄트지는 두껍고 단단하고 번지지도 않고 운반과 보관이 편리하다. 종이가 완성되는 수많은 과정을 생략하고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켄트지는 '압축'한 종이고, 화선지는 '뜬(물에서 떠낸)' 종이다. 이러한 제작특성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재료와 기법도 달라지게 된다. 압축된 켄트지에는 크레파스와 아크릴 같이 두껍게 칠해지는 작업이 가능한 반면, 화선지에는 부드러운 모필로 선을 긋거나 번짐의 기법을 표현할 수 있다.
화선지의 번짐은 그리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번져가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당황스러움은 화선지의 단점일까? 이제 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생각을 전환해 보자! 수강생들에게 학교 주차장 반쯤의 넓이에 화선지를 펼치게 하고 먹물이든 물감이든 먹고 있던 커피든 음료수든 뿌리고 던져서 스미고 번질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동원해 보라고 주문한다. 먹물은 커피의 크림에 들어있는 지방성분과 엉겨 묘한 조형을 구축하였고 아교와 이름 모를 접착성분의 액체들은 물감과 교감하여 환상적인 얼룩을 만들어 낸다.
여러 장을 겹겹이 쌓아 놓은 화선지는 차례로 아래로 스며들면서 예상치 못했던 미지의 형태(풍경)를 만들어낸다. 열정을 감출 수 없었던 한 학생은 학교식당에서 까나리 액젓을 얻어와 뿌리는 바람에 은은한 갈색의 배색은 얻었지만 점점 짙어가는 묘한 비린냄새를 수업이 끝나가는 내내 함께해야만 했다. 화선지의 스밈과 번짐은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을 전혀 그려보지 않았던 학생들도 화선지에 스미고 번지면서 형성된 형태에서 자신들의 감정들을 끄집어낸다.
전통은 보존과 계승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존과 계승은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가야 함이 그 안에 숨어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림인 한국화는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모습으로 현대미술과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의미 있게 존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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