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간판 투수였지만 음주폭행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상남. 이미지를 바꿔보자는 매니저의 권유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게 된다. 아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않겠다며 심드렁하던 상남은 아이들의 굵은 땀방울에서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보게 된다.
제목 '글러브'는 단순히 야구장갑을 뜻하지 않는다. 원 제목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바꾼 건 '글러브(G-love)'란 단어에 '러브(Love)'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엔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 감독과 선수, 교사와 학생, 선수와 매니저 간 사랑이 흐르고 넘친다.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들로 이뤄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야구부'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연예프로그램(천하무적야구단)으로 여러 차례 국민 가슴을 울렸다. 검증된 스토리인 셈. 영화는 여기에 초심을 잃어버린 프로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덧입혔다.
마음이 망가진 프로야구 투수와 청각장애 야구부원들이 전국대회 1승을 위해 의기투합, 분투하는 이야기는 예상 가능한 감동코드를 따라 흐른다. 웃음도 감동도 딱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터진다. 그러나 대중의 코드를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는 강우석 감독의 리듬 연출은 뻔하고 촌스럽고 투박한 이야기를 살아 뛰게 만든다. 웃겼다 울렸다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글러브'의 미덕은 장애를 가진 선수들의 도전을 그리면서도 눈물겨운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향하지 않는다는 점.
성심학교가 야구부를 만든 건 청각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기 때문이란다. 수화를 통해 작전을 지시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말처럼 쉬울까. 타격음을 듣고 공의 궤적을 예상하는 게 야구다. 말을 할 수 없기에 “마이 볼!”과 같은 선수간의 콜사인도 주고받을 수 없다. 안쓰러운 이런 장면들은 울컥하게 하지만 영화는 보여줄 뿐 매달리지 않는다. 오로지 야구에 쏟는 이들의 열정에만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아들, 내 동생의 모습으로 공감하게 이끈다.
극중 마음이 망가진 프로야구 선수 상남이 코치로서 먼저 하는 말은 “너희들이 흘린 땀만 믿어라”다. 그리고 그는 테크닉 이전에 몸에서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가르친다. 강팀과 연습경기를 주선한 뒤, 0 대 32의 참담한 패배를 안긴 상남은 아이들을 이끌고 100㎞를 뛰고는 지쳐 쓰러지고 널브러진 아이들에게 외친다.
“남들에게 이상하게 들릴까봐 겁먹지 말고, 분한 만큼 억울한 만큼 소리 질러라.”
큰 스코어 차의 패배가 부끄러웠던 아이들은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이때부터 야구단을 해체하려는 학교에 맞서고, 좋아하는 소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다. 뻔한 장르의 뻔한 이야기를 바로 무청 같은 우리 아이들의 씩씩하고 싱그러운 성장기로 유쾌 상쾌하게 들려줌으로써 울림의 색깔을 바꿔놓는 것이다.
진정성을 뿜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특히 팀의 유일한 투수라 손끝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선수 교체 없이 공을 던져야 하는 차영재 역의 장기범, 역시 유일한 포수 역할의 김혜성 등 야구부원들의 열연은 실제 성심학교 선수들의 투혼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야구 경기 장면은 야구 선수들이 봐도 감탄할 만한 영화를 내놓고 싶었던 강우석 감독의 욕심이 느껴진다. 기교 부리지 않고 진정성과 배우들의 호연만으로 재미와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강우석의 직구. 공 끝이 살아있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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