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걸어온 길도, 갈 길도 다르지만 돌무더기가 있는 길목에선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돌무더기엔 삶의 미학과 진정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돌무더기는 정교하지 않다. 허술하고 느슨하다. 그 헐거움이 돌무더기의 매력이다. 그러나 방만하지는 않다. 그 곳을 지나는 이들이 마음닿는 대로 쌓아올린 형태이기에 제멋대로 풀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탑은 저를 지탱하는 뼈대가 손상되면 허물어지지만 돌무더기는 돌 몇 개가 빠져나가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힘이 응집돼 있기 때문일까? 돌무더기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군집을 이루어 하늘을 지향하면서도 땅을 거역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땅에 단단히 제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왜 돌무더기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까? 돌무더기엔 이르면 우리는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침묵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돌무더기 위에 한 두 개의 돌을 올려놓으면서 가족의 안녕을, 가슴깊이 감춰두었던 꿈을 포개 놓는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절절한 마음이 군집을 이루고 하나가 돼 돌무더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돌무더기 앞에서 경건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나날이 새로운 것이 늘어나고, 옛것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다. 돌무더기도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개인주의의 팽배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인간 소외현상이 극심해진 이때 우리는 위대한 결속력의 구조물인 돌무더기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돌무더기를 이루어 하나가 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최일걸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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