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매년 여름철의 냉방부하와 겨울철의 난방부하에 의해 최대전력수요가 경신되는 패턴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올 겨울의 최대전력수요 경신 자체는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대전력수요 경신 시에도 10%를 상회하던 전력공급 예비율(전력공급능력 대비 예비전력)이 올 겨울은 5%대로 예비전력이 위험 수준인 400만에 육박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전력수요 급증과 전력계통 운영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예를 들어 전력수요 급증으로 발전소에 과부하가 걸리고 이로 인해 한 발전기가 불시에 정지된다면 전력계통에 연결된 나머지 발전기들이 그 부족한 용량을 실시간으로 분담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과부하가 지나쳐 다른 발전기들이 부족한 전력을 보충해 주지 못한다면 극단적인 경우 전력계통에 연결된 모든 발전기가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정지돼 대규모 정전 즉, 블랙아웃(Black-Out)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초유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예비전력이 400만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단계별 비상수급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지난 1월 17일 최대전력수요(7314) 경신 시 예비전력이 404만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은 이상한파가 지속될 경우 비상수급조치(중요도에 따른 전력차단 등 조치)의 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비상수급조치가 가동되기 전 일지라도 부족한 예비전력은 전압 및 주파수 등 전기품질 유지에 큰 지장을 초래하며, 발전기 과부하 운전에 따른 피로 증가나 충분한 계획정비 불가로 인한 고장 및 수명 단축의 가능성을 한층 높일 것이다.
올 겨울 전력 부족의 원인이 산업용 전력 수요와 전기난방 수요의 증가라는 데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산업용 전력 수요 증가는 기업투자 증대 및 경기 확장에 따라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공장 가동률이 높아진 결과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지만 난방용 수요의 급증은 '값싼 전기의 역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에도 불구하고 물가인상을 의식한 정부가 몇 년간 전기 요금을 꽁꽁 묶어 두는 바람에 난방 에너지원으로서의 전기가 가스나 등유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생긴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이후 도시가스와 등유 가격은 45% 인상된 반면 전기 요금은 13% 인상에 그쳤고, 이에 올겨울 전기난방 수요는 1700만에 이르러 전체 전력수요의 24%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3년까지는 전력공급능력이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적어도 향후 수년간 우리나라는 여름철과 겨울철의 반복된 전력부족 사태에 신음할 전망이다.
현재 전기요금이 원가의 평균 93.7%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전력 과소비를 조장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전기요금 현실화가 전력부족 사태의 확실한 해결책이지만, 물가반등 우려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 요인들을 수년간 외면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그리 매력적인 대안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해결책은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이지만, 발전소 한 기를 건설하는데 최소 3년에서 최장 10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당장의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전력생산과정에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급능력 확충으로도 능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유일하게 실행가능한 해결책은 전 국민이 동참하는 '절전'이다. 절전의 방법으로 대기전력 차단이나 고효율 기기 사용 등을 통해 전반적인 전력수요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력수요가 특히 집중되는 오전 11~12시 및 오후 5~6시에 전기 난방기의 플러그를 잠시 빼두는 지혜가 요구된다. 강제라기 보다는 자율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던 우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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