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
또한 '탈(脫)'이라는 단어적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벗어남', '자유로워짐'인데, 대전미술의 흐름상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난 작가의 정신적 혹은 작품의 방법론적 사유의 결과물들인 평면의 릴리프식 제작, 오브제 사용, 설치 개념의 등장, 해프닝과 이벤트 그리고 퍼포먼스 아트, 영상 등이 등장하는 전환기적 경계 지점을 추적하기 위한 의도다.
대전미술에서 갖는 탈평면의 전환점을 보면 1970년 충남청년미술인회가 기성세대의 게으른 미학 개념을 뛰어넘고자 했던 탈장르적 작품들과 한남대학교 대학생들로 19751225 멤버들이었던 정장직, 이종협, 정길호의 대전역 해프닝 및 대평리, 내탑 등으로 확산된 실험성 짙은 활동 그리고 대전의 추상 1세대인 르뽀 그룹으로 구획된다. 이어 목원대학교를 대표했던 대전 ′.78세대의 평면적 실험, 실내외 설치, 행위를 통한 새로운 사유에 의해 제시된 방법론들이 김한과 이건용에 의해 정착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또한 1980년대 공주권에서 야투를 창립해 대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임동식과 홍명섭, 유근영, 백준기 그리고 야투 멤버들은 19751225와 대전 ′.78세대 등 젊은 작가군들과 협력하여 대전을 독특한 입지로 끌어올린 장본인들임에는 틀림없으며, 예술을 한 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하며 탄착군을 형성시킨 시기라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 대전의 위치와 좌표를 찾는다는 것이 대단히 애매한 일일지 모른다. 특히나 오광수는 한국미술을 논할 때, 1930년대 후반부인 동경화단 시기를 '제1모더니즘'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를 뜨거운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시기로 구분한 '제2모더니즘'으로 설정하여 확연한 작품의 경계를 추적하였고,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과 AG, S·T로 이어지는 현대적 실험성을 '제3모더니즘'으로 설정했다.
김미경의 경우 2003년 출판한 『한국의 실험미술』에서 한국의 1960~1970년대 미술상황을 '실험미술'로 명명하고 있다. 김미경이 바라보는 실험미술의 범주는 오브제의 도입, 대좌의 제거, 상황과 장소의 중요성과 함께 설치와 해프닝, 이벤트 혹은 이러한 성격을 띤 영화 등이 발생한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강태희는 '실험미술'이라는 용어는 새로움을 원하는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정신 혹은 태도의 차원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기를 실험미술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판단하여 더 좋은 대안이 나올 때까지 '탈평면 미술'로 사용할 것을 자신의 논문 '우리나라 초기 개념미술의 현황:S·T 전시를 중심으로'에서 제안하였다.
이에 필자의 관점에서 대전 현대미술의 기록들을 보건대, 서울과도 연계돼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이후 대전 현대미술의 경향을 '대전권의 실험미술'로 규정하려 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적 활동과 이에 시각화 되는 예술의 속성상 고착화되지 않는다는 시대성과 유동성을 감안하여 대전의 1945년 이후부터 1960년대 말기까지를 '평면기'로, 1970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를 '탈평면기'로 그리고 그룹의 부흥기를 맞이한 1980년 '금강현대미술제'부터 1988년 '야투-세 곳의 섬으로부터'까지를 '탈평면기의 확산'으로, 1993년 징후그룹부터 1995년 '거리미술제'까지를 '탈평면기의 지속'으로 분류하여 '대전미술의 탈평면화 과정과 퍼포먼스 아트'적 관점을 피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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