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그 교수 강의 안습이야!' 사오년 전에 우연히 인터넷 공간에서 본 어떤 학생의 내 강의에 대한 평이다. '안습'이란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어서 알아봤더니, '안구에 습기가 찬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하는 일종의 신조어 같은 것으로, 대체로 눈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감동의 눈물은 아니고, 뭐랄까 민망하다거나 안쓰러운 경우에 해당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내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거나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학생도 그리 적은 편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강의를 잘한다고 자부할 형편은 못되지만, 내심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 또한 한두 명에 그치는 것은 아니기에 그 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사회와 세상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부가 되었든 생활이 되었든 세상을 걱정하는 삶의 주체가 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터득하는 자득(自得)의 공부를 강조한다.
강의중 학생들로부터 수 없이 듣는 질문 몇 가지를 보자. 교재만 보면 됩니까? 보고서는 언제까지 내야 합니까? 분량은 얼마를 써야 합니까? 시험 문제는 어떤 형식으로 냅니까? 등이다.
이처럼 시시콜콜한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간단하다. 마음대로 해라. 내 강의방식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고기를 먹기 좋게 잘게 썰어주는 요리사는 아니다. 단지 고깃덩어리를 내주고 그것을 날로 먹든 익혀 먹든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스스로 자신의 방법으로 요리를 해먹으라고 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정해진 길로 유도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 강의의 기본원칙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빈틈없이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선생님과 부모님이 지도하는 대로 따라오기만 했던 그들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내 강의방식이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분명한 지침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령부득이라거나 곤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나 인생관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확대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교육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교실에서 인생과 세계는 사라지고 점수만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학생들이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고 나아가 세상을 생각하는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자면, 기성세대가 신진세대에게 지금까지처럼 정답과 기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도전과 긴장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엉성한 내 강의방법을 나름대로 정당화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결코 친절한 요리사도, 친절한 교수도 아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강의평가와 거기에 따른 인센티브 수당을 적게 받더라도 내 강의에 대한 소신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학문과 공부에 대한 학생들의 선입관을 고치기 위해 더 노력할 생각이다.
물론 강의에 대한 기본원칙은 고수하더라도 다양하고 효과적인 교수매체를 활용하는 등 소소한 강의방법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내가 고쳐야 할 부분과 학생들이 고쳐야 할 부분을 최대한 반영하여 강의에 임해야겠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친 다음 학생들로부터 그들의 눈가에 감동과 고마움의 눈물이 고이게 되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 교수 강의 안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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