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비롯한 타 시군과 연결되는 길에 방역초소들이 만들어졌지만, 불안한 마음에 자체적으로 방역대책을 세우면서 출입을 통제하는 마을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류인플루엔자까지 덮치면서 지역사회 전체가 깊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10만 마리씩 살처분 되는 현재의 구제역 사태를 바라보며 분노를 감출 수 없는 것은 초기대응을 규정대로만 처리했어도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절규에 가까운 안타까움 때문이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정부는 축산 농가에 책임의 화살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농민을 구제역 유입의 범인으로 직접 지목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공식적으로 구제역의 원인을 발표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퍼진 상황에서 농림식품부가 방역본부에 보낸 서한에서도 “내 농장은 내가 지킨다는 책임과 의무를 가져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정부의 이런 인식은 축산 농가의 소양 부족으로 원인을 찾으며 '축산허가제'도입 논의와 구제역 발생농가에 대한 책임추궁에 따른 보상에 있어서의 차등지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초의 바이러스 유입경로에 대한 문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제역 전파의 책임은 분명하게 정부에 있다. 구제역 최초 발생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11월 29일이지만 그보다 일주일 전인 11월 23일 안동 축산 농가 3곳은 방역당국에 구제역 의심 신고를 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구제역 의심 신고를 접수한 뒤에도 간이 키트 검사만으로 '음성'판정을 내린 뒤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구제역 의심 가축이 발생하면 시도의 가축방역관은 의무적으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통보해야 한다는 지침을 무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주일간 구제역을 방치했으며 이 기간 동안 구제역 바이러스는 사람과 차량 등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초기 대응의 안일함은 충남 방역현장에서도 드러났다. 경북, 강원, 경기북부, 경기남부, 충북까지 구제역이 확산될 때도 고작 고속도로 톨게이트 몇 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했을 뿐이었고, 천안과 보령에서 공식적인 구제역 양성판정을 받은 뒤에야 부랴부랴 국도 주변에 초소를 확대했다. 현장의 농민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대책을 세우는 행정에 대한 질타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구제역을 진압하는 것이다. 더 이상 농민들이 애써 기른 가축이 살처분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지난 11일 강기갑 의원은 “제2의 국방인 방역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전군을 동원해서라도 구제역 방제를 위한 인력부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들의 협조만을 대책이라고 얘기하는 정부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다. 재앙에 버금가는 구제역 사태 해결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집중할 때인 것이다.
구제역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면 구제역 확산의 책임을 명확하게 묻고, 직간접적 피해에 놓인 축산농가에 대한 재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축을 잃은 농민들과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이 입었을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어쩌면 인류와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 하는 더 큰 고통들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는 구제역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바이러스가 동식물을 공격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뿐만아니다. 작년 지구온난화가 부른 이상기후 현상은 농업생산량을 30년만에 최저치로 떨어뜨렸다.
상업적 경제적 논리로 저비용으로 많은 생산량을 확보하겠다는 농업 패러다임이 식량주권을 수호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근본적 대책마련으로 수정되지 않는 이상 전지구적 재앙 앞에 우리 역시 피해갈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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