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겸훈 한남대 입학사정관 |
어떤 상황을 우리가 통제관리가능하다면 위기라고 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고 관리가 불가능할 때 위기라고 한다. 지금처럼 발생지역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부조차도 구제역의 확산경로 파악은 물론이고 확산속도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위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대한민국의 축산사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기세라는 점에서 재난상황이고 국가위기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좀 다른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구제역 사태에 대응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종합해볼 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욱이 그간의 정황을 살펴보면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참을 수 없다. 발생 초기 '경북 안동 방역망' 방어면 된다던 방역 당국은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12월 15일에 경기도 연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초기대응 조치가 사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헛구호였음이 드러났다.
이번사태의 경우 경북도청이 농가의 구제역 의심신고를 접하고도 일주일 정도 소극적 대응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구제역확산의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구제역 양성판정이후 정부의 방역당국은 경북지역 방역망이 뚫린 상황이후 확산차단을 위한 대응조치가 미흡하였다. 따라서 구제역을 조기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초기대응이 실패와 함께 위기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응함으로써 화를 키우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지방정부에서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위기관리시스템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우선 중앙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갖고 있는 취약함을 보완해 위기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초기대응의 미숙은 물론이고 위기의 진화단계에서 유연한 상황대처능력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46명의 숭고한 젊은이가 희생된 천안함 폭침사건부터 11월 북의 연평도 포격상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끊어진 듯 이어져 있는 이 두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은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최근에 청와대는 대통령실의 위기관리센터를 확대 개편하는 등 외형적 변화 조짐을 보임으로써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이명박대통령의 국가안보에 대한 편협한 안목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탈냉전 이후 국제사회의 다극화에 따라 국가를 위협하는 요인은 전쟁과 같은 전통적 안보에 국한하지 않는다. 새로운 안보위협요인으로 테러, 재난, 환경오염 및 전염병 등이 추가되면서 포괄적 안보개념이 등장한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전쟁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의 붕괴가 그 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어떤 것보다 우리사회에 구제역이 더 위협적인 것 같다. 만약 대유행단계로 진입하면 대한민국의 축산산업기반은 붕괴될 것이고 실질적인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비교우위를 들먹이며 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수입하여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험한 발상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농촌에서 소와 돼지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식용이나 가축 이상이다. 가족이며 가족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을 산채로 묻어야 하는 농심을 헤아려서 단호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해주길 간구한다. 새해에는 요란한 빈수레가 아니라 서민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정책들로 가득차 소리 없이 일할 때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진정한 친서민 정부로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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