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등학교 교감 |
8개월이 흐른 지금, 교무부장님의 말씀이 유효할까 자문해 본다. 어림도 없다. 감정을 이기지 못해 핏대 올리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든 경우도 있다. 다혈질이라 그렇다며 변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족한 인격 탓이다. 때 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언행일치 못하는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랄 때도 있다. 그래서 신묘년 새해를 맞이해 말(言)과 관련된 좌우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심하게'와 '뒤끝 있게'
28년간 어린 학생들을 지도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소심하게 생활한 덕분이다. 필자가 대범해서 초등학생들에게 현장체험학습을 할 때 '몇 시까지 어디 어디로 오라'고 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난리법석일 게다. 그래서 초등학교 선생님인 나에게 '소심하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로 들린다. 남들이 '소심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세심하다'나 '배려한다'라는 단어를 몰라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린다.
입방아에 오를만한 직장 이야기나 논쟁거리를 밖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도 소심해서다. 안에서 치열하게 치고 까부를지언정 밖에 나가서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란 생각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며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 접할 때도 있다. 개인의 감정이 개입돼 골탕 먹기도 한다. 그러나 모르는 척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제로는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전형적인 소인배 마음이다. 뒤탈이 두려워 도마 위에 올려 찧거나 까부르기는 더더욱 할 수 없다.
가끔 남의 능력보다 인간성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할 때가 있다. 마치 성인군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존경받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남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는 말처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계기로 삼는다.
종종 상대방에게 실컷 화풀이 한 후에 “나는 뒤끝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본다. 화풀이한 본인의 마음은 풀어졌을지 모르나,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당한 상대방의 얼굴은 화끈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며 '뒤끝 있게 살자'라는 좌우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뒤끝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이 그렇게 불러주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강자가 그런 말을 한다. 약자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어도 '뒤끝 없다'는 사람의 지속적인 뒤끝(?)이 두려워 조용히 묻어 둔다. 학습효과다.
사람들은 권력의 흐름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과 부대끼며 생활해야 할 때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허물을 뒤집어 쓸 때, 책임이 전가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버선목처럼 뒤집어 보일 수 없어 화가 난다고 한다. 힘 있는 자의 말이 잘못 된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고, 본의 아니게 살까지 붙여 약자를 모함한 경우도 있다며 후회스럽다고 한다.
이제 필자도 지천명(知天命)인 50줄에 막 들어섰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견지해 여러 사람 앞에서 화내는 일은 삼가야겠다. 근묵자흑(近墨者黑)하지 않도록 하되, 오해의 소지가 있을 때에는 당사자와 단둘이 대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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