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1시 천안시 풍세면 용정양계단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를 막도록 단지 진입로와 도로변을 아예 펜스를 쳐버린 이곳의 8농가는 3.6㎞ 인근까지 확산한 AI의 공포에 집 밖 출입조차 삼가고 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동안 피해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며 서둘러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
풍서천 하천을 따라 형성된 용정양계단지는 2004년에 이어 2008년에도 산란계에서 AI가 발생해 재입식에는 발생일부터 6개월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폐사한 닭값은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가축을 기르지 못한 기간의 손해보상은 어려웠다. 일부 농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들의 눈빛은 절망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어 낮 12시 구제역 의심신고가 양성반응으로 확인돼 살처분이 진행 중인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오모(35)씨 농장. 오씨는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식 같은 소 120마리에게 “마지막 여물이라도 먹이겠다”며 이를 나눠 주고 있었다.
▲ 천안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서 1일 천안 광덕면 행정리 인근의 오리농가에서 방역관계자들이 오리를 살처분해 매립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천안=이민희 기자 photomin@ |
오씨의 농장에서 사육되는 한우는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 엄모씨 농장의 젖소 등에서 구제역 양성판정으로 반경 500m 안에 있다는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이 예고됐고 이날 오후 안락사에 이어 인근 농경지에 모두 매립됐다.
중학교 시절 농장경영을 미래의 꿈으로 삼은 오씨는 고향인 강원도에서 축산대학이 있는 천안으로 이주했고, 함께 축산학을 전공한 아내와 10여 년 동안 땀을 흘리며 농장을 키웠다.
천안시가 20여 일전부터 운영하던 방역초소가 오씨 농장 인근에 설치돼 방역 효과를 본 탓인지 젖소들은 구제역 증상이 없지만, 예방차원에서 모두 살처분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오씨는“누워있는 배 부른 소가 내일모레면 새끼를 낳는다”며 “아무것도 모르고 여물을 먹는 소들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어젯밤 늦게 방역 당국에서 살처분 가능성을 전화로 연락했는데 오전 8시까지 연락이 없었다”며 “오전 6시에 젖을 짜와 젖이 불어 아파서 우는 젖소들과 나도 함께 울고 말았다”고 울먹였다.
젖소들의 모습에 안쓰러운 오씨는 오전 8시부터 젖을 짜기 시작해 2시간여 만에 마쳤지만, 이때서야 살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오씨는 “점심이라도 먹이고 보내려고 잘게 썰어 발효된 고급 사료를 줬다”며 “다시 소들을 키우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어릴 적 꿈인 젖소 농장을 위해 5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천안=맹창호 기자 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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