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은기 중앙공무원 교육원장·경영학 박사 |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공의 역사로,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즘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 서서 여야갈등, 진보 보수의 갈등, 지역갈등 뿐만 아니라 여여갈등, 야야갈등, 노노갈등까지 나타나고 있다. 결국 국가적으로 갈등코스트는 증가되고 현대 경제의 생명인 '속도의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세상은 빠른자와 느린자로 나뉠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권력이동을 통해 이런 주장을 했다. 전통적 산업사회는 큰 것과 작은 것 또는 강한 것과 약한 것으로 우열이 결정됐지만 정보화사회는 빠른자와 느린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런 구분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에도 적용된다. 즉 빠른 기업이 느린 기업보다 유리하고 빠른 국가가 느린 국가보다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다. 그 이유는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 돼 있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경영학자들도 우리나라 기업의 성공요인을 스피드경영에서 찾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 또한 빠른 의사결정과 빠른 정책실행 그리고 빠른 국민서비스에서 나온다.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도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극복했다.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려는 강한의지와 예산의 빠른 집행 그리고 다른 나라 보다 한 박자 빠른 선제적 정책대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속도+빨리빨리 문화=스피드 코리아 빠른국가'라는 공식이 앨빈토플러도 감탄하는 우리나라의 성공모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방식에 문제가 생겼다. 지역갈등, 계층갈등, 정파적 갈등, 이념적 갈등 등으로 인해 속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갈등으로 인한 속도저하는 모두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스티븐 코비 박사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신뢰의 속도'다. 사회구성원이 서로 신뢰할 때는 스피드 성과가 높아지지만 서로 불신할 때는 스피드성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은 대부분 이해관계의 충돌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불신감이 강한 집단끼리 소통이 많아지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부작용도 생긴다. 따라서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이 신뢰라는 요인까지 감안한 스피드성과의 공식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디지털 속도+빨리빨리 문화)x=스피드성과'. 이때 ''는 바로 '신뢰'다. 신뢰가 높으면 스피드성과도 높아지고 신뢰가 낮으면 스피드 성과도 낮아진다. 세계 최첨단의 디지털 기반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상호불신과 갈등으로 인해 더 치열한 갈등을 빚고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발전속도를 죽이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도 불신하는 사람끼리는 갈등의 증폭으로 이어지기 쉽다.
2010년 G20정상회의 성공적 개최는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역사적 성과의 결실이다. 전쟁의 폐허로 인해 원조받던 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선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산업사회의 물결에 뒤져있던 우리가 '새벽종이 울렸네'를 외치면서 맨몸으로 속도전을 펼쳤고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를 앞서가자'는 슬로건으로 추격전을 펼쳐 코리아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앞으로 지구촌은 속도의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이다. 선진국들이 신뢰를 중심으로 스피드성과를 얻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술과 빨리빨리 문화로 놀라운 스피드성과를 창출 해왔다. 이제 진정한 선진국형 스피드 코리아를 만들어 가려면 디지털 속도와 신뢰의 속도를 합쳐야 한다. 이 두 가지 속도가 합쳐진다면 앨빈 토플러도 감탄할 세계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의 꿈을 꾸고 있다. 국민 모두가 '신뢰의 속도'를 높인다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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