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힘들면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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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힘들면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기억하세요

  • 승인 2010-12-30 17:43
  • 신문게재 2011-01-01 13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신묘년 새해. 한국 영화계의 염원은 점유율 60%를 넘었던 그 때를 재연하는 것이다. 출발은 좋다. ‘황해’ ‘헬로우 고스트’가 박스오피스 2, 3위에 올라있고, 다음 주 개봉할 ‘심장은 뛴다’도 관심이 높다. 비록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에는 밀리고 있지만 다양한 영화가 각각 제 몫을 해내는 게 더 좋다. 한국 영화계도 영화팬들도 다 힘을 내자. 새해를 맞아 가상으로 박스오피스 선두를 다투는 ‘황해’의 구남과 해리 포터의 새해 인사를 들어 봤다.

 
■ 황해
감독: 나홍진. 출연: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사람 죽이러 황해를 건넌 사람더러 새해 인사를 하라는 기요?

거, 참. 나 구남이우다. 부모님이 세상을 구하는 사내가 돼보라 지어준 이름인데 이름값도 못하고 살았수다. 구질구질하게 산다고 구남이요, 개처럼 취급받고, 살아남기 위해 개처럼 물어뜯었으니 필경 개 구(狗)자, 구남이 되고 말았수. 나처럼 노름에 빠지고 돈이 된다고 사람 해 끼치는 일 하지말기요.

내 얘기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디다. 그 때문에 팔자에 없는 새해 인사도 하게 된 거일 거마는, 그게 다 하정우 김윤석씨 배우들과 나홍진 감독 덕분이우다. 내가 봐도 찐 하드만. 리얼 액션이니 잔혹극이니 뭐니 하는데, 좀 세긴 해도 그냥 드라마, 멜로드라마로 봐주슈. 딸이 있고 부인은 한국에 돈벌러간 평범한 옌볜의 택시기사 이야기. 그 평범한 남자가 궁지에 몰리면서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이야기 아이겠소.

2시간 반이 넘는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을 기요? 나 감독이 워낙 잘 뽑아내기도 했지만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살릴 건 호흡 하나까지도 살려낸 덕분이우다. 이야기도 볼거리도 풍성해졌지요. 여러분도 새해라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계획 세우지 마시고 버릴 건 버리고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보시라요. 내 장담하건대, 반드시 이룰 거우다.

근데 어쩐다. 도끼를 휘두르고 핏물이 흥건한 영화를 새해 아침부터 보시라 권하기가 영 그러네. 그래도 썩 잘 만든 영화이니 놓치진 마슈. 그리고 조선족이며 탈북자며 외국인노동자며, 이방인이라 업신여겨 하지 말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회가 됐으면 하오. 내복을 보자기 삼아 머리에 두르고 도망 다니는 중이라 가야겠소. 그럼 이만. 새해 복 많이 받으슈.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
감독: 데이비드 예이츠. 출연: 대니얼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마법 세계는 볼드모트 손아귀에 들어가고,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볼드모트의 영혼의 조각이 보관된 호크룩스를 찾아내 파괴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새해 새 아침. 좋은 아침예요. 새해를 맞으니 제 기분도 새로워진 것 같아요. 영화보시고 걱정 많이 하시는 거 알아요. 마법 같은 특수효과는 꽤 볼 만한데 분위기가 영 아니죠. 어둡고 음울해요. 마법 세상이 볼드모트 손에 떨어져 온통 음울한데다, 시종 제가 고생하는 모습만 등장하니 안타까우셨죠. 미안해요.

하지만 이렇게 이해해주세요. 제 나이가 열일곱, 아니 새해가 밝았으니 열여덟인가…. 어쨌든 사춘기가 된 소년이 어둠과 위험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와 맞닥뜨린 거잖아요. 론이나 헤르미온느나 다 서로를 의심하고 질투하느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잃게 되는 찰나, 바로 그 순간이라고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꿋꿋하게 이겨낼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여러분도 그러시리라 믿어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시면, “익스펙토 패트로눔”하고 큰 소리로 외치세요. 제가 사악한 디멘터를 물리칠 때 쓴 마법주문인데, 날 지켜주는 하얀 생명체 페트로누스를 불러내는 주문이에요. 나쁜 생각, 살(煞)이며 액(厄)이며 악귀 등 온갖 삿된 것들을 몽땅 쫓아내줄 거예요. 아시죠? 이 주문을 쓸 때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는 거. 행복한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강력한 페트로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거.

 올 여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에선 볼드모트를 물리치는 씩씩한 모습 보여드릴게요. 불타는 호그와트에서 벌어지는 최후의 마법 전쟁, 그것도 3D랍니다. 그 영화가 10년 세월 저를 아껴준 여러분과 이별하는 게 될 테니, 설레면서도 서운해요. 그러나저러나 호그와트 교수님들, “복 많이 받으시라”하는 주문은 뭔 가요?
 

■ 라스트 갓파더
감독: 심형래. 출연: 심형래, 하비 케이틀.
 
<줄거리> 마피아의 대부 돈 카리니는 아들 영구를 공개하고 조직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영구가 돌아왔다. 땜통머리에 잠방이를 배꼽 위로 추키고 ‘띠리리리리리’ 익살을 떨던 그 영구 맞다. 한국 시골마을이 아니라 1950년대 미국 뉴욕으로의 귀환이다. 마피아의 대부가 아버지란다.
‘디 워’와 비교한다면 괄목상대다. 이야기의 구조도 탄탄하고 촬영 편집 음악 등도 한결 세련돼졌다. 1950년대 뉴욕을 재현해낸 CG는 일품이다. 한국식 슬랩스틱 코미디로 본 고장 미국 시장을 노크하는 심형래 감독의 도전정신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한국의 가족주의를 목청 높이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 기대 잔잔한 웃음으로 설파하는 점이 특히 그렇다. ‘저수지의 개들’ ‘내셔널 트레져’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준 하비 케이틀이 호흡을 맞춘다. 포복절도할 한 방은 없지만 익숙한 몸 개그가 향수를 자극하고 착한 이야기가 따뜻하다.

 
■ 헬로우 고스트
감독: 김영탁. 출연: 차태현, 강예원
 
<줄거리>자살에 실패한 상만. 귀신이 보이고 한 술 더 떠 귀신들이 그의 몸을 공유한다.
 
차태현의 ‘1인5역’ 연기가 처음이자 끝. 그의 몸에 골초귀신 변태귀신 울보귀신 먹보귀신이 들락날락거리기 때문인데, ‘어두운 캐릭터’와 ‘밝은 오버 연기’를 오가는 ‘생쇼’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을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어색함을 무마해버리는 차태현의 재능이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코미디의 밀도도 떨어지고 스토리의 얼개도 엉성하지만, ‘헬로우 고스트’는 마지막 한 방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무의미하게 보였던 장면들이 큰 그림의 조각이 되어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되는 반전은 영화의 흠결을 싹 잊게 할 만큼 강력하다. 서서히 울먹이다 펑펑 눈물을 쏟는 차태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큰 감동이 가슴을 친다. 새해맞이가 ‘희망 품기’와 결을 같이하는 거라면 새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 한 편의 영화다.


■ 트론: 새로운 시작
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제프 브리지스, 가렛 헤드런드
 
<줄거리>사이버 스페이스로 빨려 들어간 샘. 그곳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만난다.
 
 1882년 작 ‘트론’은 너무 앞서 간 영화였다. 사람이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프로그램과 싸운다는 ‘매트릭스’적 발상은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시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테크놀로지로 만든 빛과 소리의 쇼”라고 썼다.

 30년 전 작품을 업그레이드한 ‘트론: 새로운 시작’은 말 그대로 ‘빛과 소리의 쇼’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충분하지 못했던 사이버 스페이스는 CG와 3D의 마력으로 빛을 발한다. 라이트 제트기의 공중전은 입이 딱 벌어지는 볼거리다.

다프트 펑크의 사운드 트랙은 음악이 영화를 어떻게 돋보이게 하는지 입증하는 사례다. 월트 디즈니가 이 오래된 유산을 창고에서 꺼낸 의도는 분명하다. 오비원 케노비를 닮은 주인공,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무기 등등. 즉 사이버 스페이스의 ‘스타워즈’를 꿈꾸는 거다.

 
■ 아메리칸
감독: 안톤 코르빈. 출연: 조지 클루니, 이리나 비요르크룬드
 
<줄거리>킬러의 삶에 지쳐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로 잠적한 잭. 클라라와 연인이 된다.
 
 조지 클루니와 전문 킬러.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펼쳐질 것 같은 조합이지만 ‘아메리칸’은 배신한다. 삶에 지친 킬러의 이야기이며 킬러의 일상에 깃든 불안을 조용히 지켜보는 영화다.

 조지 클루니는 직접 무기를 제작하는 톱클래스 청부살인업자 잭을 연기한다. 은퇴를 선언한 잭. 그의 회한과 쓸쓸함, 삶의 애잔함이 느리고 고요하게 촬영된 영상에 진하게 배어나온다.

해맑게 웃으며 가방을 뒤적이는 연인을 보며 총을 만지작거리고, 성행위를 할 때조차 냉정함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킬러의 불안을 드러내고 이탈리아의 수려한 영상으로 말을 대신하는 솜씨에서 감독의 전직이 느껴진다(안톤 코르빈 감독은 사진작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새해보다는 연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영화. 그러게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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