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윤 건양대 대학원장 |
그런데 견제와 비판이 품격을 갖춘 대화와 토론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보기 싫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몸싸움을 하고 주먹이 날아가고 해머가 등장하는 것에 대하여 저급한 추태라고 야유를 보내지만 실은 그 모습이 바로 우리 내면의 반영이자 실상 아닌가? 돈 많고 권력을 잡고 있는 계층은 정치가 좀 조용했으면 좋겠지만, 잃을 것이 없는 계층에서는 그들을 위해 몸으로라도 싸워줄 정치집단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난장판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같은 정서를 조장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불만계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국민 개개인 요구의 집합이라면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대리인을 뽑는 것이 선거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먹을 날리는 것이 추태라면, 그런 국회의원을 뽑은 사람들의 양식과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몸싸움에서 비켜 서 있는 행정부 관료들은 전적으로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일하는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양심불량의 관료들과 공무원들은 몸싸움 같은 수고 없이도 국민 등치는 데는 오히려 정치권보다 한수 위다. 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호화 청사에 고급 관용차를 부리는 것은 기본이고 무료 해외연수 내지는 유학, 투명하지 않은 판공비, 그것도 모자라 눈만 뜨면 새로운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등 그들의 국민기만 또한 광범위하고 크다.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서의 한미 FTA 재협상, 한국 순시선을 들이받은 중국 어부들의 굴욕적 송환 등 국가의 품위와 국민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사대주의적 행태 또한 열거하기 어렵다. 정치권은 그래도 유권자의 정서라도 반영하고 있지만 일부 그릇된 신념을 가진 관료들은 점잖은 방법으로 국민들을 등치고 또 좌절시킨다.
사법부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사법적 판단이 종종 권력의 편에 선다는 현실의 벽에 국민들은 답답해한다. 제4의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언론 역시 국민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지 못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많은 언론들은 마치 기업으로서의 이익에 충실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교묘한 수단을 동원하여 약자들을 윽박지르고 매출을 높이는데 힘을 이용하기도 한다. 요즘 보통 국민들은 많은 언론에서 정의로운 뉴스가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독재 아니면 국민들의 직접 저항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
요즘처럼 보통 국민을 위한 정부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때가 없다. 물론 국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지구적 초 경쟁의 환경 속에서 밀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인식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인 것처럼 받아들여져서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간다는 점이다. 불만계층이 증가할수록 싸움의 정치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부당한 권력과 부자들을 상대로 싸울 수 없는 평범한 국민들은 그들 대신 싸워줄 정치인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국가 권력기관들이 보편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보통 국민들에게 신뢰와 기쁨을 안겨주기를 기대한다. 보통 국민들이 행복해야 좋은 나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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