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언복 목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
나는 2011년 새해를 맞으며 ‘억지 없는 한해’를 빌었다. 지난 한 해 너무 많은 ‘억지’에 시달리고, 너무 많은 억지에 지친 때문이다. ‘억지’의 사전에 오른 뜻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무리하게 내세워 보려는 고집”이다. ‘어거지’와 같은 말이다. 억지의 ‘억’은 악쓰다의 ‘악’과 뿌리가 같은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악’은 ‘아가리’의 어근으로서, 입(口) 또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이로써 억지란 이치나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소리 높여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임이 드러난다. 낯붉히고 핏대 올려 우선 상대방의 기부터 꺾어놓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억지꾼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편 가르기를 좋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편을 만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반대편을 억압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사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탐구를 통해 최선 내지 비교선을 찾아보려는 노력보다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세력화하여 일방적인 관철 방식을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이뤄내야 할 목표를 먼저 설정해 놓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 이들의 관행이기도 하다. 억지꾼들은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명백한 과오조차도 상대방의 몰이해와 비협조 탓으로 풀칠하고 흙칠한다.
우리 사회에 이 억지가 너무 차고 넘친다. 서로 다른 욕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이해가 충돌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넘어선 과도한 이기심이나, 이에서 비롯된 일방적 자기주장은 모두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병원에 넘쳐나는 ‘나이롱환자’, 지원금 노린 가족해체 현상, 일본의 다섯 배나 된다는 인구대비 소송건수 등은 이 억지가 우리사회 일상에 얼마나 폭넓게 만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상급식문제를 둘러싼 자치단체들의 갈등은 이 같은 억지의 극치라 할 만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급식문제의 본질은 마땅히 ‘교육’에 있어야 옳다. 그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논쟁의 중심에 ‘예산’만 있을 뿐 ‘교육’은 없어 보인다. 확신하지만, 무상급식은 능사가 아니다. 없어서 주리는 아이들을 위한 급식이야 백 번 잘하는 일이지만 ‘부자급식’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헛된 일이다. 아이들 식단을 챙기는 엄마와 ‘엄마표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 사이의 교육적 성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밥의 의미와 가치를 올바로 일깨우는 일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제대로 된 논의나 연구는 아예 염두에도 없이 당리당략을 숨긴 채 세를 몰아 밀어붙이려고만 드는 행태는 명백한 억지이다. 앞 뒤 꽉 막힌 억지 앞에 상식이나 지성 따위는 처음부터 설 자리를 잃고 갈등 조절능력은 고사하기 마련이다. 목소리 크고 세 넓은 사람만이 이기는 억지사회는 야만이고 원시일 뿐 문명사회는 아니다. 억지는 결국 모든 사람들을 절망시키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다. 억지가 판치는 사회에선 누구나 다 피해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억지가 계층이나 신분을 떠나 우리사회 전반에 하나의 ‘문화’가 되어 가는 듯싶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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