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수상소식에 너무 놀라 무슨 말을 이어야 할 지 몰랐다.
▲ 박영주 충남예고 교사 |
7년 전 나는 7살 뇌병변 장애 1급을 가진 8살 큰아들, 5살짜리 작은 아들과 함께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평범한 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을 어떻게 키울까?' 하는 근심과 걱정으로 모든 시간을 보냈었다. 이렇게 근심과 걱정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나에게 어느 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현정효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박선생님!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서 나랑 함께 봉사활동을 해보는 것이 어때요?”
“봉사요? 저 그런 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제 자식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무슨….”
“아니에요! 박선생님이 갖고 계신 음악적 열정과 저의 봉사 노하우를 합하면 정말 멋진 봉사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큰 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거고요!”
현정효 선생님의 조언대로 나는 공주 봉황중학교 리코더부 학생들로 구성된 음악봉사단과 두 아들을 데리고 첫 봉사나들이로 공주에 있는 명주원을 방문했다. 명주원 식구들은 우리가 준비한 음악회를 함께 즐겼고 맛있는 간식도 나누어 먹었다. 그 때 봉사단장이었던 진철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아이 참 귀여워요! 명주원 귀염둥인가봐요!”
나는 진철이가 이야기하는 아이를 본 순간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 아이는 바로 내 큰 아들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진철이에게 내 큰 아들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의 봉사가 계기가 되어 봉황중학교 남학생 60명으로 구성된 봉황음악봉사단을 데리고 공주관내 복지시설 순회음악회, 공주의료원 목요음악회, 학부모지도봉사단활동 등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나의 미친 듯한 봉사 덕분에 남편은 봉사에 필요한 악기를 싣고 다니기 위해 승합차를 사야만 했다.
올해 충남예술고등학교로 전근 간 나는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이기에 음악봉사활동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취미로 음악을 하는 학생들보다 전공을 통해 대학에 진학해야 하기에 음악봉사단 조직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다행히 조세연 교장 선생님의 격려와 정태수 선생님의 도움으로 뮤직플러스봉사단을 만들 수 있었고 인근 인애학교 음악봉사부터 다시 봉사의 첫 발을 내디뎠다. 시간에 쫓겨 봉사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했던 학생들이 천안인애학교 봉사를 통해 음악봉사의 참맛을 느꼈고 장애인초청음악회, 다문화가족초청음악회, 단국대학교 병원 음악회, 찾아가는 사회복지시설 4박 5일 음악·봉사캠프 등 다양한 부문으로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7년 동안 전근 가는 학교마다 봉사단을 만들어 끊임없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내 곁에서 함께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신 든든한 내 인생의 멘토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초년생 선생님들을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선생님! 교직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멘토를 꼭 찾아 보세요. 선생님 주위에 많은 선배선생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멋진 선생님이 되어 보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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