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석 수필가·대전문인협회장 |
비록 붙잡고자하는 뜻은 서로 다르더라도 인간이 추구하는 세월은 바로 삶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시간의 정체와, 뜻을 모르고 산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불교가 가르치는 윤회의 동그라미인지, 힌두교 설법처럼 나선의 바퀴인지, 아니면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직선의 질주인지 알 수가 없다. '모 나더냐, 둥글더냐.' 춘향이 사랑가 같은 나의 시간타령은 고뇌의 허공만 맴돌 뿐이다. 잃어버린 시간 찾기는 누구도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가장 소중한 것을 고르라면 누구나 시간일 것이다. 하나만 붙잡으라면 시간의 정체를, 하나만 알라면 시간의 뜻을, 그리고 하나만 이루라면 시간의 보람을 선택할 것이다. 나 역시 가장 가지고 싶은 오직하나를 선택하라면 시간이다. 시간은 곧 생명이요, 삶이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뿐이랴. 모든 존재의 욕망이다. 영원도 시간의 뜻이고, 존재도 시간의 이어짐이다. 성공과 영광도 시간위에서만 빛난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위를 떠난 화살 같다. 현재를 깨닫는 순간은 이미 과거다. 엄격한 의미에서 현재는 없다. 시간은 영원히 한 번밖에 없다. 시간의 역설이지만 불변의 진리다. 역설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만이 순간을 붙잡는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고 읊었다. 단한 번뿐인 생명이기에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허송세월 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삶과 더불어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에 24시간은 누구나 똑같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차이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에게 사용을 떠맡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여치 않는다.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있고,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사람도 있다. 따라서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의 차이는, 곧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차이다.
바른 생각, 바른 실천만이 순간을 영원으로 이어낼 수 있다. 거짓과 허황된 결단에 빠져 허우적대는 더렵혀진 역사의 이름들을 떠올려보면 한번뿐인 시간사용의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지난 1년을 어떻게 살았는가. 해마다 이때쯤이면 뒤돌아본다. 1년이 지나갔음은 1년만큼의 역사를 쌓았다. 따라서 그 역사 속에 무엇을 기록하고, 무슨 이름을 남겼는가. 1년의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가버린 1년의 시간만큼 죽음의 시한도 비례적으로 짧아졌다.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이치다. '화무십일홍', 또는 '권불십년'이란 옛말은 그냥 옛말이 아니다. 시간의 정체와 시간의 뜻을 깨우치게 하는 엄중한 교훈이다. 특히 국리민복의 일선에서 통치역사를 새기는 권력집단에게 절실한 시간의 교훈이다.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한정돼있다. 어떤 역사를 새겨 후세에 전할 것인가. 지나간 1년을 반성하고, 다시 맞는 새로운 1년 앞에서 엄숙하게 다짐해야 한다. 한 번 간 망년의 시간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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