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망년회, 술 그리고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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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망년회, 술 그리고 소크라테스

[중도춘추]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 승인 2010-12-23 16:59
  • 신문게재 2010-12-24 20면
  • 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에 분명하지만 설명이 안 되는 단어들이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랑'이라는 단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감함을 느낀다.

▲ 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 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아마도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책을 한 권 남겼다. 그 유명한 '심포지엄'이라는 책이다. 우리말로는 '잔치', 혹은 '향연'이라고 번역되었다. 심포지엄이 '함께 마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그렇게 번역한 것 같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밤을 새우며 사랑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참석한 사람들이 방에 원형으로 비스듬히 누워 맛있는 것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어서 아마도 '심포지엄'이라고 한 것 같다.

'심포지엄'에서 사랑 외에도 중요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사생활이다. 아테네의 유명한 통치자였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사모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심포지움'에서 이 알키비아데스의 입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술에 대한 얘기가 재미를 더해 준다. 알키비아데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술을 즐겨 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술을 마실 기회가 있으면 결코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고, 누구의 잔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포지엄'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술에 골아 떨어졌다. 한 숨도 자지 않은 소크라테스는 전혀 취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동료들의 잠자리를 챙기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한 다음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플라톤은 묘사하고 있다.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면서 술을 마시고도 멀쩡하게 하루 일과를 잘 하는 소크라테스를 보면 부럽다 못해 화가 난다. 얼마나 주량이 세고 건강하면 그게 가능할까.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논하면서 절제, 용기, 그리고 지혜가 잘 조화를 이룬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이 네 가지 덕목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절제라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우리말에 '술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라고 취하지 않으라는 보장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어떤 경우에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그가 주장하는 절제의 주법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잘못 살았기에 연말에는 꼭 망년회(忘年會)를 한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았기에, 그리고 얼마나 잘못 살았으면, 아니면 뭘 그렇게 잊고 싶은 것이 많아서 12월 한 달로 모자랄 지경이다. 잊기에 가장 좋은 도구는 술이다. 그래서 인지 망년회에 빠지지 않는 것도 바로 술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술 수입량과 소비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 음주가 늘어났다느니 하는 것으로 애써 무마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됐든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 같다.

망년회와 술, 아무리 관계를 부인해도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지난 한 해의 나쁜 기억과 좋지 않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우리는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잊기 위해 마신 술이 잊지 못할 또 다른 나쁜 추억을 남길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절제야 말로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주법도 배워 남은 망년회를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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