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RI 3680지구 전 총재.연세소아과병원장 |
젊어서부터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는 재미를 붙인 나는 나이를 먹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두 딸들은 몸무게가 조금 늘기라도 하면 '아빠가 우리 어렸을 때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라며 '이유없는(?)' 항변을 한다. 나이 먹고 흰머리가 늘면서 혼자 길거리에 서서 떡볶이와 어묵을 사먹기가 점점 어려워져 퇴근 후 떡볶이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 애들과 나눠 먹곤 했다. 그 바람에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들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나도 억울하다. 떡볶이의 칼로리라는 것이 겨울철 인기 간식거리들 중에서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떡볶이 한 접시의 칼로리는 226k㎈이다. 200g짜리 군고구마 한 개 칼로리는 256k㎈이고, 호떡 한 개(244k㎈)만 먹어도 떡볶이 칼로리를 능가한다. 닭꼬치 두 개, 호두과자 5개도 떡볶이 한 접시 칼로리보다 많다.
다만 어묵만은 비교적 칼로리가 적은 편이라서 세 개 정도 먹고 국물까지 한 컵 들이켜야 떡볶이 한 접시와 비슷하다. 이쯤 되면 떡볶이로 인해 살찐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게다가 떡볶이 한 접시를 혼자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대개 나누어 먹지 않나? 그래서 나는 억울하다. 이렇게 애들이 눈치를 줘도 떡볶이를 향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주위 사람들 눈치 보느라 포장마차 출입을 조금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결혼 초기에는 나의 포장마차 행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던 아내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금씩 순대를 좋아하게 되면서 은근히 이것 저것 싸들고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가끔은 바라기도 한다. 또 아주 가끔 문자메시지로 찐빵, 만두와 같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기도 한다. 반드시 '당신 때문에 살이 찐다'는 푸념을 잊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겨울철 밤거리를 아내와 함께 산책하다가 새로 생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파는 젊은이를 보았다. 목이 좋은 자리는 고참들이 자리잡고 있어 파고 들어갈 수 없었을 터이지만 자리가 별로 좋지 않다. 밤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다. 불판위에 잔뜩 놓인 떡을 바라보면서 '기왕 추운 날씨에 장사를 하겠다고 젊은 사람이 나섰으니 잘 돼야 할텐데…'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젊은이가 추위를 이겨내며 포장마차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을씨년한 거리에서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아직 시간이 일러 그럴 것이다. 조금 더 밤이 깊어지면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공부하다 집에 들어가는 어린 학생들과 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몸을 녹이기 위해 그 젊은이의 포장마차에 들를 것이다. 그곳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고 떡볶이로 배를 채우며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점점 힘들어지는 공부와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세상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은 언제나 생겨서 자라나고 커질 것이라는 밝은 미래를 얘기할 것이다. 이렇게 떡볶이 속에도 세상이 있으니 내가 어찌 떡볶이를 멀리 하겠는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