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철 대전예술고 이사장 |
혹자는 이를 안보 불감증 등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고, 혹자는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화 등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국민의식의 성숙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음직하기도 하다.
지식의 양이 한정 되어 있고, 사고 체계가 단순화 되어 있던 시절 한 개개의 사건이 국민 개개의 삶 자체를 지배했을 수 있으나, 지금의 우리 국민의 수준은 이를 구분지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도 있음이다. 오히려 위정자들이나 사회지도층이 숲을 못보고 숲안의 나무만을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씁쓸함이 묻어날 정도니 말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와 역량은 비단 이러한 국가 사회적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처 능력 뿐만 아니라, 기부행위라는 숙성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일부 단체의 기부금 횡령 등의 사건으로 시민들의 실망감과 더불어 돈의 그릇된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자신의 것을 기꺼이 사회의 혜택을 덜 받고 있는 이웃들과 나누려 하는 시민의식은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얼마 전 중국의 한 기업인이 우리 돈으로 약 11조원을 기부한 사실이 있다고 하고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기업인들은 매년 우리 돈으로 수조원씩을 자신들의 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그들의 돈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곳에 기부한다. 영국, 벨기에 등 유럽왕실 멤버들의 주된 행사 중 하나가 자선 모금 파티를 주선하거나 참석함으로써 더 많은 기부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국민의식과 외국 사회 지도층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 지도층의 자선 행위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점이 있지 않나 지적해 보고 싶다.
먼저, 우리 사회는 자선 기부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양식 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기관이 많은 듯 하다. 부산대에서는 기부자의 돈을 지정된 사용처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전용했다가 소송에 휘말렸으며, 경기도의 자치 단체는 공원을 조성하라고 준 땅에 주차장을 지어 돈 장사를 하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비단, 기부자의 고귀한 뜻은 접어 두더라도 기부 행위와 기부자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조치 조차 되어있지 않은 사회에서 과연 기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뉴스에 우리나라 굴지의 그룹에서 '통큰'기부라 해서 200억원을 기증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안하는 것 보다야 낫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한국의 기업집단이 기여한 큰 공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벌은 태생과 성장과정에 시장논리만을 내세우기에는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진 빚이 많다.
연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이득을 내며 대한민국을 점령한 그들이 온갖 생색을 내며 기부한 액수가 그들이 과거 불법적 비자금을 만들어낸 액수와 비교하면 씁쓸해짐이 이상한 것일까.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재산 80%를 기부한 독지가와 비교하면 안되는 것일까 반문한다. 떠들지라도 말았으면 추운 겨울이 조금은 따스해졌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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