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 |
머슴 중에는 주인이 곁에 있든 없든 자기집 일처럼 눈치 안 보고 열심히 일하는 주인 같은 머슴도 있지만, 대부분 주인이 있을 때에는 열심히 일하는 척 하다가도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슬슬 쉬면서 적당히 일하는 머슴도 많았다. 그런 머슴은 사경을 많이 받지 못했고, 다음해에는 재고용되지 않았다.
주인과 머슴 사이에는 의식에 큰 차이를 보인다. 주인은 집과 논밭이 자기 소유물이니까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 즉 애정이 있다. 주인은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한다.
반면 머슴은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기보다는 주인이 시키는 일만을 하는 경향이 있고,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집의 물건이나 땅에 대한 애정이 있을 리 없고 세월이 지나가 1년의 계약기간이 속히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주인과 머슴이 사라진 자리에 나그네만이 떼지어 드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넘친다. 머슴은 시키는 일이라도 하고 주인의 눈치라도 살피지만, 나그네는 어떤 의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마치 철새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일까? 교직원은 일정한 근무기간이 만료되면 전출가면 그만이지만, 학생은 졸업을 해도 모교와 졸업생이라는 관계가 영원히 성립되니 학생이 주인의 성격에 맞을 것 같다. 그런데 학생에게서 주인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선생님의 존재 유무를 살펴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거나 휴지나 껌 등을 아무 거리낌없이 버리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도한다고 해도 신통치 않아 골칫거리다. 버리는 학생은 많은데 줍는 학생은 거의 없다. 나그네의 모습들이다.
아이들만 탓할 것도 없다. 거리에 나가보면 운전자 중에 담배를 차안에서 피우고는 운전석 차창을 열고 어김없이 담배꽁초를 떨어뜨린다. 실내에 재떨이가 없는 차종이 그렇게도 많을까? 차창 밖이 온통 쓰레기장인 줄 아는 것 같다. 그 차 뒤에 탄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계속 군것질을 하는 모양으로 껌종이며, 과자봉지 등을 연방 차창 밖으로 던진다. 하긴 어려서부터 아빠, 엄마가 하는 그런 행위를 수도없이 봐 왔을 테니까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겠지.
새벽에 천변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전날밤 가족 단위로 잔디밭에 나와 놀고간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술병이며, 휴지조각, 남은 음식물들이 널브러져 뒹군다. 먹고 마시며 한바탕 즐긴 뒤 가볍게 떠난 나그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인이 나그네로 전락한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국가는 어떻게 될까? 모두 나그네에서 돌아와 주인으로서 권리와 행세를 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다.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나그네가 아닌 주인으로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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