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창발성'의 세계로 떠나보자

흥미진진 '창발성'의 세계로 떠나보자

개미집단처럼 개체가 모여 전체적 특성 이루는 현상을 다뤄 강신철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백북스 공동운영위원장

  • 승인 2010-12-21 14:21
  • 신문게재 2010-12-22 12면
  • 강신철 백북스 공동운영위원장강신철 백북스 공동운영위원장
이 책의 지은이 스티븐 존슨은 브라운대학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 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면 온라인 잡지 <피드>의 공동 창간자이자 편집장이다. 그의 글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런던 가디언>, <링구아 프랑카> 등에 발표되었고, 저서로는 [무한상상 인터페이스]가 있다.

지난 몇 세기 동안의 과학적 성과를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눈다면, 첫째는 행성의 자전이나, 전류, 전압, 저항의 관계와 같이 변수가 둘 혹은 셋인 '단순 체계'에 관한 연구이고, 둘째는 수백만 혹은 수십억 개의 변수에 접근하기 위해 통계와 확률을 이용하는 '비조직적 복잡성' 문제다. 셋째는 이들 단순체계와 비조직적 복잡계의 중간에 속해 있는 '조직적 복합계'의 문제를 다루는 과학이다.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들은 개체로 보면 하등동물인데 집단이 형성되면 어떻게 그렇게 영리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고대 도시들은 누가 설계한 것도 아닌 데 어떻게 저절로 형성돼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하는가? 단순한 뉴런들이 모인 두뇌는 어떻게 그렇게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이런 문제들은 기존의 통계적 방법이나 현대 과학으로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상호연결된 다수의 요소들을 동시에 취급해야 하는 '조직적 복합계'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로렌츠의 나비효과, 만델브로의 프랙탈 이론, 프리고진의 카오스 이론 등이 모두 조직적 복잡계 연구 영역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조직적 복잡계가 성립하려면 첫째, 활동 개체 수가 어떤 임계치를 넘어야 한다. 둘째, 개체들은 전체 조직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인 규칙에 따라서만 행동한다. 셋째, 개체들은 무작위적으로 자유롭게 이동을 하면서 다른 개체들과 자주 마주친다. 넷째, 개체들은 신호의 패턴을 찾아 움직인다. 다섯째, 개체들은 이웃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조건이 형성되면 저차원의 법칙에서 고차원의 복잡계로 발전하게 되는 데 이러한 현상을 창발성이라고 한다. 창발성(emergence)이란 수많은 개별 행위자들이 어떤 지도자의 계획이나 명령 없이 국지적인 법칙에 따라 상호작용함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영리해지고 변화하는 환경의 구체적 요구에 대응해 스스로 질서를 찾아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고대 도시의 형성과 개미집단의 생태계가 대표적인 창발성의 발현 사례다. 마을의 중앙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웃과 자주 접하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유사한 기능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중요한 기능은 전면으로 부각되고 덜 중요하거나 혐오스러운 기능들은 외곽으로 물러남으로써 도시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뇌도 창발성의 걸작이다. 하나의 뉴런은 인식 능력이 없지만 수십억 개의 뉴런이 결합하면 자기인식능력이 발생한다. 이웃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쌍방향 연결 되먹임이 더 높은 수준의 학습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창발이 일어난다.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월드와이드웹이라는 거대한 미로를 통해 수억 명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 새로운 형태의 창발이 일어날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트윗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들이 자기조직화 시스템의 특징인 되먹임, 이웃과의 상호작용, 패턴인식 등의 작용이 일어나면 지금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전혀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던 하향식(top-down)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체는 상향식(bottom-up)으로도 도도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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