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대전건축사회장 |
또 지난 2009년 12월 전북 전주시가 시행한 건축설계경기에서 4개사가 응모했으나 당선되지 않았다. 이어 올해 4월 다시 시행된 설계경기 결과에서 이 4개 업체는 모두 실격처리됐다. 전주시는 1차 공모에 응모한 4개 업체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발주기관에 있고 동일 작품을 다시 출품하는 것은 창의성이 없는 등 건축설계경기 취지에 부적절하다며 실격처리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발주기관에 귀속시키는 저작권 범위는 당선작의 경우 건축물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저작재산권의 1회 이용허락권', 입상작은 '전시와 출판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으로 한정한다며 발주기관에 귀속된다는 약관조항은 무효라고 밝혔다.(2009년 7월 9일자 건설타임즈)
위의 두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건축 저작권에 대한 인식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림이나 음악처럼 건축물에도 저작권이 있다. 예를 들어 건축물 사진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때 건축물의 소유자뿐 아니라 설계한 건축사에게도 저작권료를 줘야 한다. 위 사례는 대기업이나 국가기관조차 이런 기본적 규정조차 잘 모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건축사들도 적극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문화가 아직 부족함을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5월 28일 설계 공모 입상작 저작권을 발주기관이 가져가는 관행을 고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의 관행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기관이 설계자의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전부 양도받는 약관조항으로서 그 양도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설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므로 무효다.
저작권 전부 귀속 조항의 대표적인 유형은 '입상작의 저작권 및 사용권 등 법적 소유권은 발주자에 귀속한다'이다. 건축설계자는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5호, 8호, 동법 제41조 제1항 및 제42조 제1항에 의거 설계자는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 공표권, 양도권, 이용허락권 등에 대한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지침서, 제안요청서, 지시서 등을 통해 법적 소유권이 발주기관에 귀속된다는 내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물론 발주기관은 건축주로서 건물을 직접 소유·사용할 자이므로 당해 건물을 건축하고자 저작권 사용권한이 필요하다. 따라서 발주기관에게는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 1회 이용허락권, 전체 입상작에 대한 당해 설계경기 관련 전시·출판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하는 것이 적정하다.
미국의 경우 표준 설계 요소인 방, 문, 창문, 지붕, 선 등은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표준 설계요소들을 특별히 선택, 배열, 조합한 경우에는 저작권의 보호범위에 속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건축설계도에서 입면이 비슷하거나, 건물의 배치, 조경, 주차 공간, 수직 교통의 패턴이 실질적으로 같은 경우는 유사한 설계로 인정해 적극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설계자가 죽은 뒤 70년까지 권리행사를 인정하며 건물에 대한 증·개축 시 설계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축시공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나 설계부문은 아직도 선진국과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문화선진국을 지향하는 21세기에 건축저작권 논란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후진성의 한 단면이다. 문화선진국은 법 이전에 국가기관과 시민의 의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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