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그런데 이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수련할 때에만 지녀야 할 마음가짐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비교는 곧 경쟁의 문고리다. 보통사람들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틀에서 벗어나 사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이며 과연 가능한 것인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쟁을 하는 것이라서 동물의 세계는 물론이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까지도 햇볕을 더 받고 영양분을 더 섭취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데. 커피종자도 하나를 심는 것보다 두 개를 심어야 더 잘 자라게 된다고 한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즉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것이다. 잘하는 사람에게서는 본을 받고, 잘못하는 사람에게서는 그릇된 점을 살펴 깨우치라는 뜻이다. 남과 비교해 좋은 점을 본받고 잘못된 점은 고치며, 지난일과 비교해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현재를 바로 알아 내일의 향상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정작 자신은 반성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무엇인가의 차이를 찾아내려 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왜 자기와 같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성에 눈뜨지 못한 사람은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스스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관심을 쏟는다. 이런 현상이 커질수록 자신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사회를 각박하게 만든다.
한 이주 여성의 글에서 본 내용이다.
'한국 사람들은 층계를 좋아 하는 것 같다. 마음속에 무수한 층계를 만들고 못사는 사람은 무조건 자기보다 낮은 단계에 서있다고 생각하며 얕보고, 잘사는 사람은 무조건 질시하는 것 같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러나 정작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유별난 비교심리, 결코 남의 등을 볼 수 없다는 우리 특유의 경쟁의식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젯밤 회식에서 1차 쏜 부장님 말고 2·3차에서 지갑을 연 이는 누구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자 이제 1등이 아닌 모두를 생각해 보자' 한 광고 카피다.
이처럼 오로지 일등만이 인정받고 기억되는 현실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찾는 것은 물정을 모르는 순박한 처세관일까?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치열한 삶 가운데서 잠시라도 벗어나고픈 현대인들의 잠재의식에서 빚어지는 현상은 아닐까 한다.
소월은 그의 시 '가는 길'에서,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가자고….” 노래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흐르는 물이 한두 번쯤 보(洑)에 고이고 호수에 머무르면 어떤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올해는 비록 호수안의 물처럼 흐름을 멈추고 있다하더라도, 머문 사이에 스스로를 추스르는 여유를 가질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더 지니고 더 누리고 더 앞서고자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보고자 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우매한 바람일까? 세밑의 문턱에서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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