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중 대전예총 사무처장 |
대다수 예술가들의 평균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며, 창작만으로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소득 제로' 예술가도 적지 않다. 반면 생존 작가의 그림이 1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하고 구스타프 클림트나 반 고흐의 그림은 1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상위 5%의 스타급 예술가들이 전체 소득의 95%를 가져간다니 예술사회 또한 전형적인 '승자 독식 사회'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동전의 양면 같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뭔가 특이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술가의 소득수준이 낮은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왜 예술분야에서는 각종 지원이나 기부 등의 후원영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까? 네덜란드의 예술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서 바로 그런 질문들을 던진다.
예술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바로 예술계가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는 무한경쟁에 가까운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렇게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장밋빛 환상에 이끌려서 젊은 예술가들이 과잉 공급되고, 그 결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거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난한 예술가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러 통로를 통해서 후원을 얻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예술창작의 동인이 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을 대신한 '심리적 소득', 혹은 '비금전적 내적 보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예술가의 자존심 혹은 자긍심으로 표현돼왔고 예술가를 예술가로서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신이 재능이 있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자만심과 자기만족에 이끌려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 자체의 순수한 경쟁력만으로는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간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이들이 문화예술발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예술적 가치의 사회적 확산과 그 역할의 확대를 위해 문화예술에 대한 여러가지 방식의 지원이 행해져 왔다.
그래서 예술가가 되기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각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창조활동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의미보다는, 자본주의 바깥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고 그런 사람들이 머물 최소한의 기본 공간이 지원돼야 한다. 어찌보면 그들을 또 하나의 큰 덩어리 '가난한 예술가들'로 묶어버릴 수도 있지만,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소수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다수가 되기까지의 희생과 보상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인 예총회관으로 각인되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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