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진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우리의 근대사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민족국가의 건설이 좌절되고 식민지배, 민족 분단, 전쟁과 분단체제의 고착, 군부독재, 파행적 산업화 등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와 같은 파행적 근대사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끈질긴 변혁 운동을 경험했고, 그런 흐름을 반영해 서정시는 억압적인 상황과 체제 내의 순응주의 미학을 거부하는 사회적 상상력을 경험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불의 가시적 속성을 갖는 빛은 부정하고 불순한 것을 정화시키고, 혼돈과 무질서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창조하는 신성의 대리물이며, 미래적 가치의 염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이러한 연유로 역사 현실의 압도적인 비극성은 시인들로 하여금 강렬한 불/빛을 염원하게 한다. 빛에 대한 지향성은 세계가 그만큼 황폐하고 불모적인 죽음의 현실임을 지시한다.
이것은 역사 인식의 끝에 발생하는 의식으로 어둠의 심연을 통과해 빛의 세계, 즉 희망의 나라로 나가려는 유토피아 정신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는 현실에서의 탈주와 이탈의 욕망으로서 바람직한 세계상에 대한 꿈과 희망에 대한 열망을 내포한다.
비극적인 역사적 상황은 시인들로 하여금 현실을 '어둠'과 '밤', 또는 '겨울'의 알레고리로 인식하게 하고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억압과 결핍, 혼돈과 분열을 극복한 이상 세계를 따뜻하고 밝은 '빛'과 '불', 또는 '봄'의 알레고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현대시의 향일성은 그만큼 서정시의 현실적 조건이 어둡고 황폐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지시한다. 역사 현실의 어둠에서 빛과 불의 형이상학은 발원하고 절망에서 희망의 빛을 틔우고자 하는 열망이 싹튼다. 따라서 서정시의 향일성은 부조리와 악, 모순과 고통, 부재와 결핍의 억압적 현실을 돌파하려는 계몽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암울한 밤의 어둠으로 인식되는 현실은 극복되어야 마땅하며 빛의 밝음, 불의 정화와 태양의 부성적 질서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로 전환되어야 온당하다. 이 빛과 어둠의 소박한 알레고리가 그 언어적 위력을 발휘하고 그 실천적 계몽의 의지를 고양할 수 있었던 것은, 서정시의 조건을 형성하는 역사 현실이 그만큼 사악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둠과 빛처럼 독재/민주, 지배/피지배, 억압/해방 등 이분법적으로 단순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했다. 이 같은 인식구조는 지금 여기의 세계를 부정하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세계의 모습을 너무도 분명하게 각인시켜주었고, 그에 따라 빛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게 만든다.
빛을 발하는 사물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빛은 신이고 구원이며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성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불/빛은 어둠과 대비되면서 저항과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더욱 부각한다.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불의의 힘 앞에서 인간은 고독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작은 불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게 된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 희망을 품고 그에 저항한다. 어둠 속에서 빛의 형이상학은 발원하고, 그 불빛은 거대한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전망 표상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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