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근무하는 트럭운전사 폴 콘로이. 습격을 당한 뒤 눈을 떠보니 지하 2m 아래 관 속에 생매장 당한 상태다. 그는 인질범들이 남겨 놓은 휴대폰으로 911, 부인의 친구, 회사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모두 헛수고다. 그는 살아날 수 있을까.
'베리드'는 그게 가능하고 얼마든지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놀라운 건 가로 90㎝, 세로 2m, 옴짝 달싹할 수조차 없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스릴러, 그것도 액션스릴러를 훌륭하게 뽑아낸다는 거다. 달랑 전화기 하나만으로 갇힌 사내의 희로애락을 들려주고, 테러리즘의 실체, 미국이란 나라의 모순된 외교정책, 대기업의 부도덕한 횡포, 현실 사회의 부조리까지 드러낸다. 그것도 생생하게.
한 사내가 생매장 당했다. '그에 관한 영화를 오롯이 관 속에서만 찍는다'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대담하고 독창적인 '실험'은 인트로부터 시작된다. 6분 동안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스크린 속 어둠이 객석으로 확장되는 순간, 극장은 거대한 관으로 변했고, 그리곤 러닝타임 내내 가둬놓았다. 카메라는 한 번도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조명도 없다. 빛이라곤 라이터와 휴대폰에서 나오는 광원뿐. 주인공 폴이 보지 못하면 우리도 보지 못한다.
폴과 함께 생매장 당한 느낌은 무시무시한 '경험'으로 압박해온다. 급기야 관객을 호흡곤란 상태로 몰아가는 이 영화는 감상하는 게 아니라 '극한의 체험'이다.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생략된 모든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폴이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유일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표정 연기와 코르테스 감독의 다양한 카메라 연출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레이놀즈의 클로즈업 숏은 긴장의 최고조가 무엇인지, 공포가 어떤 모습인지 관객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공포와 긴장을 넘어선 이 영화의 놀라움은 그 좁은 공간에서 액션신이란 대담한 연출을 감행한다는 거다. 물론 얼굴이 있던 곳에 다리가 가고, 다리가 있던 곳에 얼굴이 오는 불가능을 감행하는 것이다. 뱀의 공격을 받고 작은 화재까지 겪으며 희망을 놓지 않는 폴의 사투는 어느 격렬한 액션신보다 긴박감이 넘치고 강렬하다.
올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앨프리드 히치콕도 무덤에서 일어나게 할 영화'(버라이어티). '거의 모든 면에서 영화사적 성취를 보여주는 영화'(슬래시 필름), '설정을 갖고 제작될 수 있는 영화 중 최고'(필름스닷컴)란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3일 미국비평가협회상에서 올해 최고의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폴은 구출되느냐고? 대답은 관객의 즐거움으로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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