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몇 해전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쌍안경의 뚜껑도 열지않고 작전현장을 '투시관찰' 했다. 곁에서 참모총장이 설명을 하면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냥 고개를 끄덕거리기까지 했는데 이스라엘 언론은 국방장관이 '암흑을 보았다'고 이죽거렸다. 진기명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장에서 무시로 연출되는 모양이다.
최근에 안 대표가 '물병대포'로 또 한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한 안 대표가 포탄이랍시며 불에 그을린 보온병 두 개를 기자들한테 소개했다. 동행한 예비역 중장과 중위 출신 의원도 큰 보온병을 122㎜, 작은 병은 76㎜일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러한 해프닝이 방송되자 네티즌들은 안 대표가 사실은 군대를 다녀오긴 했는데 아마 '보온병과'에서 근무를 한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
말의 쓰임새와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포'는 암울한 우리 사회의 징표인 듯 하다. '마포 최대포'에 어린 향수는 저물어가고 대신 물대포와 음향대포가 등장했다.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쏘아 시위대를 해산하고 시위 참여자를 검거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불법의 폭력시위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겠다며 음향대포 도입을 고려하던 정부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이를 유보했다. 작가 조정래의 최신작에 등장하는 '말대포'는 여야가 벌이는 치열한 성명전의 애용물이다.
대신 도망간다는 뜻을 가졌다는 접두어 '대포'는 대포폰 정국의 씁쓸한 아이콘이다. 살아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대포인간'을 만들어 그의 명의로 '대포통장'을 개설하고 '대포차'를 굴리며 선량한 사람들의 금품을 약취하는 사회. 그 졸렬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몰래 사용하는 '대포폰'을 국가권력이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의 증거를 일소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만들어 쓰는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유혈낭자한 말대포질이 질펀한 작금의 대포사회에서 우리 헌법은, 헌법재판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심판종료를 선언했다. 작년 여름 국회의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 오만가지 위법들이 행해졌고 그리하여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헌법상, 국회법상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이 분명하지만 더 이상 난장판 국회입법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2항은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작년 10월말 첫 번째 미디어법 헌재결정에서 재판관 상당수는 '할 수' 있으므로 '하지 않겠다'고 말대포를 쏘았다. 무효확인청구를 기각해버린 것이다. 국회가 정치력을 발휘해 자율적으로 입법절차상 흠결을 치유하도록 배려한다는 저음의 음향대포를 간지럽게 날렸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두 번째 권한쟁의심판선고를 통해 '작년 결정에서 무효라고 말하지 않았으므로 국회에 위헌과 위법상태를 적극적으로 제거할 의무가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네 명의 재판관은 국회가 미디어법 처리의 위법성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과반을 넘지 못했다.
엎어치기 매치기는 물론 다른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대리행사'해 동료 의원을 '대포의원'으로 만들어버린 국회의 명백한 위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눈감아버린다면 도대체 법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기 나라의 좋은 시사잡지를 두고 독일인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포'라고 불러준다. 물병대포와 말대포의 대포사회에서 헌법재판소야 말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진짜 대포가 돼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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